2023년 7월11일 경기도 양평군 양평군청 인근 도로변에 걸려진 현수막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양평=뉴스토마토 유연석·배덕훈·신태현 기자] "백지화는 말도 안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 땅 특혜 의혹을 덮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경기도 양평군민의 숙원이었던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이 백지화되면서 지역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11일 오전 <뉴스토마토> 취재팀이 찾은 양평군청 일대 도로변에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 무산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져 있었습니다. 양평군낙농연합회, 양평군발전위원회 등 여러 지역 단체들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개통중단, 12만 양평군민 행복 절단', '십수 년의 기다림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는 없다' 등의 글이 적힌 현수막으로 요동치는 민심을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7월11일 경기도 양평군 양평군청 인근 도로변에 걸려진 현수막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15년 숙원 사업이 한순간에 '물거품'…두 쪽 난 '양평 민심'
취재팀이 만난 지역민들 역시 사업 백지화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는데요. 특히 대다수의 지역민들은 지역의 15년 숙원이 정쟁으로 순식간에 무산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양평군 양서면에서 만난 50대 자영업자 송모씨는 "고속도로는 국가 주요 정책인데 정치적 이견이나 야당의 의혹 제기가 있다고 해서 단숨에 '폐기한다거나 추진하지 않겠다' 등의 이런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정책적 사안이고 오랜 기간 기획한 사업을 정치 공방 과정에서 안 하겠다는 건 책임있는 정부나 정권이 할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도 "정부를 견제하는 쪽에선 당연히 트집을 잡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논란이 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백지화가 되는 게 맞나 싶다"라며 "야당이 정부여당이 예민하게 반응할 만한 과한 의혹을 제기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바로 엎어버리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40대 주부 채모씨는 "일련의 사태는 정치 싸움 때문"이라며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군민의 편의 때문에 하는 건데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하겠다, 안 하겠다' 하는 상황은 군민 입장에서 황당하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 백지화에 대한 책임 소지를 두고는 지역민들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갈라진 것처럼 민심도 두 쪽 난 셈입니다.
50대 직장인 유모씨는 "백지화는 정부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이번 백지화 결정이 김 여사 일가의 땅 특혜 의혹을 덮기 위한 것"이라며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고 종점까지 확정된 계획이 틀어지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국책사업이 애들 장난인지, 해도 해도 너무하다"라고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60대 자영업자 강모씨는 "여야를 떠나 김건희 여사 일가 의혹은 야당에서는 충분히 건의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더 나은 변경안으로 야당을 잘 설득하든, 원안으로 추진하든 해야 하는데 태클 걸면 백지화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부의 전격 백지화 결정에 불만을 표했습니다.
반면, 60대 주민 최모씨는 "당리당략적 이유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기 때문에 백지화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100%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며 야당의 공세를 문제 삼았습니다.
대다수의 지역민들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노선이 변경된 사실에 대해 언론 등을 통해 뒤늦게 접했다고 전했습니다. 그중 일부 주민은 "원안과 수정안 모두 산이 있어서 공사가 쉽지 않다"며 "이번 기회에 다시 처음부터 정말 필요한 곳이 어디고, 어디로 이어져야 효율적인지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사진=국토교통부 제공)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논란'
경기도 하남시와 양평군을 잇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양평군의 15년 숙원 사업입니다. 양평군은 2008년 해당 도로를 민자사업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경제성 문제로 미뤄졌습니다.
그러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제1차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반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합니다. 이후 2021년 양서면을 종점으로 하는 노선이 예타를 통과하면서 잠정 확정이 됩니다.
이로써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하남시 감일동에서 양평군 양서면까지 27㎞를 잇는 왕복 4차로 도로로 계획됐습니다. 총사업비는 1조7695억원 규모로 오는 2025년 착공, 2031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됩니다.
하지만 국토부는 지난 5월 돌연 사업성 등을 이유로 해당 노선을 새로운 대안 노선으로 변경합니다. 종점을 양서면이 아닌 강상면으로 옮기고 나들목(IC)을 추가하는 방안입니다. 사업비는 다소 증액이 되지만 대안 노선이 기존 예타 노선에 비해 교통량이 늘어 교통정체 해소 효과가 있다는 이유였는데요. 양평군이 국토부에 건의한 3가지 노선 중 하나와 거의 동일했다고 설명도 곁들입니다.
하지만 변경된 노선인 강상면 종점 부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특권 카르텔 의혹이 불거집니다.
이에 야권은 "윤 대통령 '처가 카르텔'"이라며 국토부가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고자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준호 의원의 질의 내용을 근거로 원희룡 장관이 김 여사 일가가 강상면 부근에 토지를 보유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맹폭을 펼칩니다.
여당은 의혹에 대해 일축하면서 "윤 대통령 처가는 땅 투기를 한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합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원 장관은 지난 6일 국민의힘과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업 추진 자체를 백지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국토부 장관 한 마디에 2조원에 달하는 15년 숙원 사업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힌 셈입니다. 그 피해는 오롯이 양평군민과 국민 몫으로 남았습니다.
양평=유연석·배덕훈·신태현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