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현대제철(004020)이 2년전 당진과 인천, 포항에 이어 올해 울산까지 지역별 사업장을 자회사로 전환해 하청 노동자 고용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 해소를 포함한 처우개선이 목적이란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원청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자회사로 물적 분할해 모회사 현대제철의 책임 소재가 분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최근 울산공장을 자회사로 분리하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경우 현대제철은 단일 공장 기준 당진과 인천, 포항을 비롯해 4번째 자회사가 설립되는 겁니다. 현대제철은 지난 2021년 현대ITC(당진), 현대 ISC(인천), 현대IMC(포항)를 세우면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바 있습니다. 이로써 당진과 인천, 포항제철소 등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 일부가 현대제철 계열사 소속으로 편입하게 됐습니다.
현대제철이 이같이 자회사를 설립함으로써 하청 노동자 직고용에 나선 이유는 국가인원위원회(인권위)의 비정규직 차별 시정 권고를 포함해 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측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입니다.
현행 파견법은 제조업에서 파견을 금지하고 파견이 허용된 업종도 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면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인천지법은 지난해 12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하고 소송비용을 피고가 부담하라고 명령한 바 있습니다.
강관제품을 생산하는 현대제철 울산1공장 전경. (사진=현대제철 홈페이지)
당시 재판에서 승소한 노동자는 소송을 제기한 925명 중 923명으로 모두 당진제철소 하청 업체 노동자들입니다. 당초 7년전인 2016년 제기된 이 소송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1500여명이 참여했으나, 일부가 자회사로 편입해 소를 취하면서 925명으로 줄었습니다. 나머지 2명은 직원 정년 연령인 만 60세가 지나 소가 기각됐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자회사 채용을 앞세우며 근로자지위확인 소 취하를 요구하는 등 법적 리스크 해소에 나섰습니다. 다만, 이같은 자회사 직고용이 불법파견 해소 대안이 아닌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특히 제철소가 지역별로 자회사로 만들어진다면,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모회사가 아닌 그 자회사에 더 큰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은 "지역 별로 쪼개 사업장을 자회사로 바꾼 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가 더 생기게 된다"며 "자회사 설립 목적이 중대재해법만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책임소재를 분산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현대제철과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하청업체는 지난해 법시행 이후 대기업 가운데 첫번째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습니다. 같은해 3월 현대제철 예산 제철소에서 근무 중이던 하청 노동자가 철골 구조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현대제철 직원이 예산 공장에 상주하는 등 현대제철과 하청업체 사이 중대재해법상 책임관계가 있는 원하청 도급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회사측은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의 모습. (사진=현대제철)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