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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공들이는 인도, 중국과 친구가 된다면…
우리는 ‘인도·태평양 전략’만 붙들고 가도 되나
입력 : 2023-08-10 오전 6:00:00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6월 2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 중 건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기자] 미국은 지난 6월 워싱턴을 국빈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역대급’으로 환대했습니다. 인도의 오랜 숙원인 전투기 엔진 공동 생산과 관련 기술 이전에 합의했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도 지원하지 않았던 최신 개량형 드론 MQ-9B 시가디언도 팔기로 했습니다.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에도 참여해 2024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인도 우주인을 보내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을 비롯해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샘 알트만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 대표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고,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인도에 8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모디 총리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연설했는데, 두 차례 이상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인사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뿐이었다고 해서 더 화제가 됐습니다.
 
2002년 구자라트 주 총리 시절 힌두교도의 이슬람교도 학살을 방관했다는 의혹으로 모디 총리의 미국 입국을 거부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였습니다. 이 같은 환대는 지난 4월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 국가가 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중국 견제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서 인도를 확실하게 대접한 겁니다.
 
포인어페어스 “미국, 인도에 대한 ‘가치 동맹’ 환상 버려야” 기고 소개
 
역대급 환대는 효과를 내고 있을까요?
 
미국의 대표적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7·8월호는 “미국은 인도에 대한 ‘가치 동맹’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 출신인 대니얼 마키 미국 평화연구소 남아시아 프로그램 선임자문역은 이 글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미국이 인도를 잡기 위해 쏟은 노력을 소개하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미국-인도 관계의 초석으로 삼는 것이 항상 의심스러운 전략이었다면, 이제는 실패할 것이 분명한 전략”이라고 단언합니다. 마키는 모디 총리의 △내부 독재 강화 △미얀마 군사 정권과의 관계 유지-무기 판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한 모든 경제제재 거부-러시아산 에너지 구매 확대 등을 거론한 뒤 “9년 전 모디가 인도 총리가 된 이후 ‘인도는 민주주의’라는 명제가 점점 더 의심스러워지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특히 모디 총리의 6월 방미 중 미국이 약속한 제트 엔진 공동 생산 등 여러 협력 사안에 대해 “미국의 정책이 중국과 관련해 미국-인도 협력 강화의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그 정책을 일단 추진해 보자는 식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향후 수십 년 동안 인도의 국내 방위 산업을 강화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마키는 모디 총리를 “현재 이 나라는 반대의견을 거의 용납하지 않는 민족주의자가 이끌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은 요르단, 베트남 그리고 다른 수많은 비자유의적인 파트너들을 대하는 것처럼 인도를 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19일과 20일 잇달아 낸 “중국과 인도가 친구가 된다면?”, “중국-인도의 데탕트가 서방에 의미하는 것”이라는 기사도 눈길을 끕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과 인도는 고질적인 국경 분쟁으로 1962년에 전쟁을 치렀고 2020년에도 라다크 갈완 계곡에서 충돌해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최소 4명이 사망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양국 군 수백명이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도는 2008년 미국과 ‘핵 협력 협정’을 맺는 등 연대를 강화하면서 미국, 호주, 일본과 합동 훈련을 벌였고, 특히 2020년 갈완 계곡 충돌 이후에는 경제 분야에서도 320여 개의 중국 앱을 금지하고 중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으며, 양국 간 무역 및 투자를 제한해 157건의 관련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2019년 10월 12일 인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부 첸나이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비공식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이코노미스트 이틀 연속 기사 “인-중관계 상당 부분 해빙…미국, 달갑지 않을 수 있어”
 
그런데 이 기사들은 뜻밖에도 “인도와 중국 간의 냉랭했던 관계는 이제 상당 부분 해빙됐다”고 전합니다. 국경 충돌에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상품 무역액이 880억달러로 급증한 가운데 중국이 46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인도의 최대 무역파트너로 부상했고, 양국 간 무역은 2021년 43%, 지난해에도 8.6%나 증가했습니다. 또 중국이 기술, 부동산, 인프라 분야에서 인도의 최대 투자처가 됐으며, 특히 모디 총리가 최우선하는 인프라와 제조업이 중국 자본에 의존하고 있는데, 인도의 대표적 수출 품목인 제약 산업 원료의 7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국경 분쟁 문제와 관련해서도 양국은 완충구역 설정 협상 끝에 5곳의 갈등 지점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안전하지 않은 장소를 일단 두 곳으로 축소했습니다. 좀 더 넓게 보면 인도는 중국이 창설한 안보협력체 상하이협력기구(SOC) 회원국이며, 역시 중국이 만든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에 최대 채무국이기도 합니다.
 
이 기사들은 이런 상황을 종합해 “인도를 중국에 대항하는 균형추로 보는 미국인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면서 “아시아의 거인들은 서로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전합니다.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 매체들이 전하는 중국과 인도 관계는 한국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정부가 미국의 전략과 이름까지 똑같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할 정도로 그대로 편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에 정부가 발표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간 연대 △규칙과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지역 질서 촉진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등은 미국이 중국 비판·견제용으로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차용한 것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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