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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대학 경영 혁신 없이 한국 대학 발전 없다
전근대적 대학 경영이 한국 대학 발전의 걸림돌
입력 : 2023-08-14 오전 6:00:00
오늘날 조직의 흥망성쇠는 가치창출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유용한 가치를 창출하는 조직은 많은 자원을 확보하여 번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조직은 도태될 운명에 처합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이 필요로 하는 자원은 입학생, 등록금, 연구비, 기부금 등으로 다양합니다. 이런 자원을 확보하려면 대학 본연의 사명인 연구와 교육을 통해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선진국 유명 대학들의 재정이 풍요롭고 천문학적 규모의 기금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연구와 교육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이 창출하는 가치가 낮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학에 대한 자원 공급은 매우 빈약하여 대다수 대학이 재정난에 시달립니다. 대학에 대한 불신도 크며, 입학정원에서 학생 선발, 등록금, 학사 운영 등에 걸쳐 그물망처럼 촘촘한 규제가 존재합니다. 
 
한국 대학이 사회가 기대하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진국 대학과 비교해 가장 부족하고 낙후된 분야는 어디일까요? 조직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경영에 있듯이 대학도 경영에서 문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학의 경영을 책임지는 총장은 임기가 4년으로 한정되며 연임은 희소합니다. 4년제 단임 총장의 역할은 단순 관리직에 머뭅니다. 그중에 열의 있는 총장은 영업직으로 나섭니다. 한때 어느 유명 사립대의 총장이 기부금을 많이 모으면서 세일즈맨 총장이라는 별칭이 유행했습니다. 재임 중에 대외적으로 열심히 뛰며 기부금을 많이 모으고 대형 국책과제를 유치해 학교 재정에 도움을 주면 훌륭한 총장이라고 평가받습니다. 관리직이나 영업직 총장에게 대학의 장기발전은 뒷전이 됩니다.  
 
대학가에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새로 총장이 선임되면 늘 장발위(장기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하지만, 계획만 요란할 뿐 실행은 하나도 못 한다고요. 
 
실제로 장기발전계획을 이행하려 시도하면 학내의 이견과 갈등에 휩싸여 하나도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대학은 구성원이 다양하여 자원배분이 달라지고 구조혁신이 수반되는 장기발전계획에 대해 합의를 모으기 어렵습니다. 장기발전을 추진하다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내홍에 시달리며 소송까지 비화해 총장직 퇴임 후에도 곤욕을 치른 사례도 여럿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외부적으로 약속한 기부금을 모아 대과 없이 임기를 채워 영예롭게 퇴직하는 것이 대한민국 대학 총장의 모습입니다.   
외국의 대학은 다릅니다. 총장 직분을 훌륭히 수행하면 10년 이상씩 맡습니다. 하버드대의 21대 찰스 엘리엇 총장은 1869년부터 40년간 재직하며 취임 당시 평범했던 하버드를 세계적 명문대학교로 발전시킨 최장수 총장으로 유명합니다. 
 
대학의 경영을 집행하는 본부의 처실장은 전문성과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이런 처실장은 주로 교수들이 맡는데 본직은 교수이고 보직이 처실장입니다. 대학가에서 교수직이외의 직분을 보직이라 하는데, 이는 직분에 보한다는 ‘보직’(補職) 이지만 실제로는 보조적 직분이라는 ‘보직’(補職)으로 통합니다. 
 
교수가 본부 처실장을 맡는 것에 대한 혜택은 거의 없습니다. 수당은 몇십만원에 불과한데 직원처럼 매일 출근하여 전일 근무해야 합니다. 과목 수는 줄여주지만, 여전히 강의를 담당해야 하고, 연구업적도 평가를 받습니다. 당연히 처실장 업무에 충실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외부 일도 하지 못해 수입 감소가 큽니다. 그러니 누가 보직을 하려하겠습니까.  
 
이전에 대기업의 CEO를 하고 대학의 총장으로 오신 분이 한 말씀이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임원을 시켜준다면 모두 고맙다고 하는데 대학에서 본부 처실장을 시키려 하면 다들 도망간다고요. 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장의 임기는 2년이며 고참 교수 순으로 돌아가며 맡고 연임은 드뭅니다.
 
외국 대학에서는 학처장도 본직입니다. 학장이 되면 일단 교수직에서 경영직으로 경력이 바뀝니다. 교수가 아니므로 강의와 연구를 하지 않고 오로지 단과대학 경영에 집중합니다. 별도 임기가 없습니다. 물론 계약을 하지만 통상 장기 재직합니다. 
 
능력있고 성과를 내는 학장은 다른 대학교에서 스카우트해 갑니다. 좀더 크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지요. 이들이 나중에 대학 본부의 처실장이나 부총장, 총장으로 갑니다. 그러니 학처장이 된다는 것은 평교수에서 완전히 직업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진국 대학의 경영은 프로가 하는 것이고 우리 대학의 경영은 아마추어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근대적 대학 경영을 그대로 둔채 우리 대학이 세계 일류 대학과 경쟁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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