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토요일 밤, 무너져 내리는 눈꺼풀을 부여잡고 텔레비전에 집중했습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36) 선수의 UFC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는데요. 화끈한 경기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경기 후 정찬성이 뱉어낸 "그만할게요"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사진=뉴시스)
26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할로웨이vs 코리안 좀비'는 투기 종목 팬들이 지난 몇달간 손꼽아 기다리던 경기였습니다. 메인 이벤트로 페더급 랭킹 1위 맥스 할로웨이(31·미국)와 정찬성이 격돌하기 때문이었죠. 정찬성은 같은 체급 랭킹 8위로 어려운 경기가 예상됐습니다.
정찬성은 지난해 4월 페더급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토프스키(34·호주)와의 챔피언 결정전을 치뤘는데요. 당시 4라운드 TKO 패배를 당한 이후 옥타곤에 오르는 경기였습니다. 연이은 강자와의 매칭은 정찬성의 위상을 보여줬습니다. 팬으로서 마음으론 승리를 염원했지만 할로웨이의 물오른 실력을 알고 있기에 승리를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경기가 시작한 후 두 선수의 펀치가 몇 차례 교환됐고 흥미진진한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1라운드는 다소 팽팽하게 지나갔지만 2라운드에서 큰 한방을 맞은 정찬성은 초크까지 걸리는 등 위기를 맞았습니다. 별명인 '좀비'답게 위기를 버텨낸 정찬성은 3라운드에 돌입했습니다. 3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매섭게 밀어붙인 정찬성이었지만 할로웨이의 카운터펀치가 적중하며 경기는 KO로 마무리됐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정찬성의 첫 마디는 "그만할게요"였습니다. 정찬성은 "나는 챔피언이 목표인 사람"이라며 "탑랭커를 이기지 못하면 냉정하게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담담하고 명료했습니다. 정찬성이 뱉은 그만두겠다는 말은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있는 선언이었습니다.
먼 훗날, 저에게도 그만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상황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때 처해진 상황에 대한 포기가 아닌, 최선을 다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그만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면 합니다. 멋진 경기뿐 아니라 삶의 태도를 알려준 정찬성 선수, 앞으로의 길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