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후 인천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 3대 개혁 완수-2023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4년의 일입니다. 인도 남부 카나타카주 방갈로르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선수들이 코스 이탈로 줄줄이 탈락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발달은 유도차량의 실수였습니다. 21㎞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 3명의 선수는 유도차량을 따라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는데요. 16㎞ 지점에 설치된 반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향한 유도차량을 따라가던 마라토너들은 4㎞를 더 달린 후에야 코스를 이탈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시에 제대로 된 코스를 알려줘야 할 조직위원회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선수들은 근처 행인에게 돈을 빌려 지하철을 타고 결승점 근처까지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당시 조직위원회는 '실격처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황당한 해프닝이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노력이 물거품 된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유도차량의 실수라는 이 사건이 2023년 대한민국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2014년의 사건을 2023년 대한민국에 대입해서, 유도차량을 윤석열 대통령으로 가정해보겠습니다. 유도차량인 윤석열 대통령은, 선수들인 정부·여당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정부·여당은 실행자들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유도차량인 윤석열 대통령을 따라서 말이죠.
그런데 윤 대통령이 여당 연찬회에서 '대한민국에 가장 중요한 건 이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교내에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뿌리라 할 수 있는 보수 정권의 박근혜정부가 이름을 만든 1800톤급 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까지 바꾸려 합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 인생 풀스토리'라는 유튜브 영상까지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또 보훈부는 건국의 아버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고, 친일 전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을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에 국방부와 보훈부가 선봉에 서고 여당이 이를 뒷받침하는 모습입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홍범도함의 이름 변경 문제를 놓고 국무총리, 국방부, 해군 등 제대로 된 입장없이 검토에서 유지로 유지에서 검토로 계속해서 입장을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 부서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체없는 '이념'을 쫓은 결과이자, 잘못된 길로 향한 유도차량을 무작정 쫓은 결과입니다.
유도차량의 잘못으로 선수들이 잘못된 길에 접어 들고 실격 당했 듯 2023년의 대한민국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국제사회에서 실격 당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