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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걷기가 가져다 준 선물
입력 : 2023-09-11 오후 5:13:24
반강제로 시작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휴직한 저에게 부모님이 가장 먼저 꺼낸 카드였습니다. 
 
딸내미가 서울로 떠난 뒤 아버지는 매일 꽃무릇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사실 '맨발걷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고루한 느낌이 앞섰습니다. 흙을 느끼고 싶은, 자연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의 전유물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것은 다 해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기에 매일 아침 부모님을 따라 나서기로 했습니다.
 
맨발걷기라 함은 촉촉한 황토를 밟으며 정취를 즐기는 정도로만 여겼는데 실상은 아니었습니다. 오돌토돌한 모래들이 가득한 마사토를 걷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땀이 나고 어머니의 옷자락을 잡아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긴장을 해서 첫 날에는 그만 멀쩡하던 무릎이 아파왔습니다. 그만큼 긴장을 해서 걷느라 무리가 갔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은 폭우가 쏟아지던 장마에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숲길을 걸었습니다. 하루에 4km 정도를 걸었는데 절반쯤 되면 저는 이미 혼이 나가 있었습니다. 언제 이 아픈 고행이 끝나려나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 물이 고여 있으면 발을 헹구는 기분이 들어 그나마 낫다가도 빗방울이 굵은 날에는 부드러운 흙은 쓸려가고 덩치 큰 알갱이만 남아 제 발바닥을 지독하게 괴롭혔습니다.
 
매일 밤 내일 아침 맨발걷기를 걱정할 정도로 제게 맨발걷기는 고통을 수반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저 좋아 늘 따라 나섰네요. 발바닥 피부가 벗겨지고 그 속으로 생살이 드러나도 '다 그 과정을 겪었다'는 부모님의 덤덤한 위로(?)에 참고 견뎌야만 했습니다. 병원에서 뵀던 의사도 마주쳤는데, 괜히 맨발걷기에 공신력이 생기더군요.
 
한 달쯤 지나니까 괜찮더군요. 한 달 전 제 모습처럼 한 발 한 발 고통 속에 오그라드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제가 선배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딱 한 달 뒤부터는 빠르게도 걷고 신나게도 걷고 부모님과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어느새 먼 길도 수월해졌습니다. 지나가는 다람쥐도 더 많이 발견하게 됐고 두더지, 뱀도 봤네요. 
 
어느 주말은 맨발걷기가 가능한 코스를 찾아 부모님과 나들이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나들이 장소를 정하는 주요 기준으로 맨발걷기가 설정된 겁니다. 새로운 숲길, 새로운 흙에서 그 땅을 느끼며 우리 가족은 또 다른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고향서 꽃무릇이 푸릇하게 대를 올리고 솟아난 것까지만 보고 저는 상경을 했습니다. 아쉬움을 뚝뚝 흘렸더니 매일 아침 아버지께서 꽃무릇 자라는 과정을 찍어주셨습니다(사진 참조).
 
지난주 TV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는 배우 이장우씨가 대모산에서 맨발로 걸었더군요. 곳곳에서 맨발걷기대회도 생기고 전국에 맨발걷기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맨발 걷기가 정확히 제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따져 물을 순 없지만,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이 제 정신건강을 풍족하게 해준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매일 아침 선생님, 이웃들과 나눈 다정한 인사, 매일 규칙적으로 아침을 만끽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 등도 덤으로 얻었고요.
 
그렇게 서울로 오면서 맨발과는 연이 끊길 줄 알았습니다. 웬걸요. 뒷동산에 올라가보니 어르신들이 줄지어서 맨발걷기를 하고 있더군요. 제 맨발걷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변소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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