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추석을 앞두고 비가 내립니다. 이번 주 초까지만 해도 반팔 차림으로 길을 걸을 때 땀을 조금 흘렸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제법 쌀쌀합니다.
습도가 높아 꿉꿉하지도, 신발과 바지 밑단이 젖을 정도로 기분 나쁘게 뿌려대던 비와는 다릅니다. 더위를 식히고 비오는 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을 만큼만 내리는 비, 괜찮네요.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은 것만 빼면.
그래도 9월 말, 그것도 10월이 며칠 안 남은 날씨 치고는 초가을 보단 늦여름 느낌이 더 강합니다. 아직은 에어컨을 틀고 사니까요. 절기상 가을 말고, 체감상 '9월=가을'이라는 공식은 언제부터 깨진 걸까요.
그래서 휴대폰 사진들을 찾아봤습니다. 1년 전 이맘때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있었을까. 불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9월 초부터 긴팔 겉옷을 입고 있더라고요. 2년 전에는 9월 말에 반팔을 입고, 겉옷을 챙겨 다녔고요.
체감하는 날씨를 객관적인 온도로 확인하고 싶어 기상청 홈페이지를 열어봤습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2013~2022년 가을 기온을 그래프로 봤는데요. 지난해 서울의 가을 평균기온은 15.7도로, 통계가 나온 최근 10년 간 최고 온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슈퍼 엘리뇨가 발생했던 2015년보다도 0.1도 더 높습니다. 슈퍼 엘리뇨는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은 기간이 3개월 이상 계속되는 경우라고 합니다. 수온 상승은 곧 어획량 감소로 이어진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인지 요즘에 가을 제철 생선 먹는 맛이 영 줄어든 느낌입니다. 가을 전어와 가을 방어.
제가 매년 가을 찾던 방어회 전문점은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발길을 끊었는데, 그 이유는 방어에서 나는 흙내 때문이었습니다. 가게 사장은 수온이 높아지니 생선들이 자꾸 수온이 낮은 흙바닥 쪽으로 내려가서 흙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흙내가 난다고 했었는데요. 당시는 핑계라고 생각했으나 현재의 기상이변을 생각하면 꽤 설득력 있는 말이었습니다.
또 올해는 제주도에서 가을 전어를 찾았는데, 역시나 그곳도 로컬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었지만 전어는 흙내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 제가 지나치게 예민한 입맛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느낄 수 없던 흙내가 났던 건 사실이니까요.
가을 옷 입는 재미도 줄었습니다. 진짜 멋쟁이는 가을에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가을만 되면 트렌치코트, 야상 등 '가을 패션'에 신경 썼던 저는 새로운 가을 옷을 장만하지 않은 지 꽤 됐습니다. 심지어 세탁소에 있는 트렌치코트를 찾지도 않고 이사를 하질 않나.
단순히 기상이변은 덥고 춥고의 문제가 아니라, 기상과 쉽게 연관 짓지 못했던 삶의 어느 자잘한 부분까지 변화를 주는 듯 합니다. 그래도 길을 다니면 은행나무 열매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오긴 왔나봅니다.
무등산 정상부 상시개방 첫날인 23일 오전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시민들이 서석대에서 인왕봉을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