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갈수록 진영 대결이 심해지는 국제질서 하에서 우리 외교가 미국, 일본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는 긍정론이 있는가 하면, 한미일 협력의 반대급부로 북중러 밀착이 촉진되어 한국의 입지를 제약한다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한국 외교의 좌표에 대해 어려운 숙제를 던진 동 회담은 또 다른 쟁점도 제기하고 있는데, 바로 아시아판 나토의 가능성 문제다. 쿼드, 오커스 발족에 이어 한미일 안보협력이 태동하자 향후 아시아에도 유럽과 같은 다자동맹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아시아 정책을 담당했던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박사는 최근 미국 저널 <Foreign Policy>에 아시아판 나토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글을 게재했다.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의 지역 안보는 유럽과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 동맹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서양 안보가 집단적이고 블록화되어 있는 데에 반해 아시아 안보가 개별적인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모델로 불리는 이유다. 그린 박사는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장개석, 이승만 같은 지도자들의 군사적 모험에 대한 우려였다. 태평양 지역이 집단 공약으로 묶여 있을 경우 지역 전체가 중국, 소련과의 전쟁에 끌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고 당시 워싱턴이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태평양 지역은 유럽 전장과 달리 미국의 해·공군력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 따라서 지역 전체를 묶지 않고도 미국이 태평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도모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린 박사는 바로 이 점이 변했다고 강조한다. 미국이 태평양 해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도 냉전 당시 나토가 유럽에서 직면했었던 집단방위의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호주, 일본 등 핵심 동맹국들이 과거처럼 미군 병참 지원 역할로 한 발 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증하는 중국, 북한 위협을 맞아 미국과의 합동작전 필요성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전쟁을 막는 것에 대한 우려가 일정 수준을 넘긴다면 현재의 양자 동맹과 임기응변적 안보 네트워크는 집단 안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시아판 나토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시아판 나토가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린 박사의 지적처럼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인태 지역에서 점점 더 집단안보적 접근을 하고 있다. 당장 다자동맹을 구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촘촘하게 우방국을 묶어 반중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유럽인과 아시아인이 바라보는 안보의 불가분성 여부다. 유럽에서 집단 안보가 탄생한 것은 비단 미소간의 군사력 격차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전장(戰場)이다. 서독이 공격받으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안전도 풍전등화에 놓일 수밖에 없다. 좁은 대륙에 많은 국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안보는 불가분성을 갖고 집단 안보는 합리적인 군사적 요청이다.
이에 반해 태평양은 광활하다. 한반도,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의 안보가 서로 영향을 미치기는 해도 불가분적 관계라고 하기는 어렵다. ‘연루의 위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 자체가 안보의 분리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반증이다. 무엇보다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중국을 위협(threat)으로 간주하는 관점도 있지만, 관리해 나가야 할 도전(challenge) 정도로 보는 시각도 강력하다. 왜 인도·태평양 전체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 역내 모든 국가가 집단 공약으로 묶여서 얻는 이익은 무엇이고, 지불해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태평양 지역의 집단 안보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니 “아시아판 나토는 안 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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