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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블랙홀'에 빠진 대한민국
입력 : 2023-10-26 오전 6:00:00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직업이 존재합니다. 기자·교사·경찰관·소방관·공무원·국회의원·변호사 등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최소 수십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0년 통합 5판을 찍은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직업 수는 1만2823개, 직업명은 1만6891개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함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학생·청소년들은 이렇게 수많은 직업만큼 꿈도 다양했습니다. 과학자가 돼 타임머신을 발명하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동물을 너무 사랑해 사육사가 되겠다는 친구도 있었죠. 하지만 요즘 교실 풍경은 좀 달라 보입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부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을 경우 상당수가 '의사'라는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의대 열풍'이 그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모집 정원을 늘리겠다고 공언하면서 이 '열풍'이 '태풍'으로 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학원에는 중·고등학생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의대 준비를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고, 대학생은 물론 젊은 직장인들까지 의대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학생과 청년들이 '의대 블랙홀'에 빠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인기가 이토록 높은 이유는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되면 정년 없이 매년 수억 원의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취업난으로 취직 자체가 힘든 데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정년퇴직의 시기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재들이 '의사'만 꿈꾸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기술의 개발을 위해서도 인재가 필요하고, 다른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도 인재가 필요합니다. 이상적으로는 훌륭한 인재들이 모든 분야에 골고루 포진해 있는 게 가장 좋겠죠.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분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일은 정부가 해야 합니다. 꼭 '의사'가 되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만족할 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다른 분야로 유인하는 대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수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모집 정원을 늘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모든 인재들이 의사를 꿈꾸는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일도 시급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의대 블랙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
 
장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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