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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품격
입력 : 2023-10-26 오후 2:26:39
17일 성남공항 ADEX 등록센터 풍경(사진=뉴스토마토)
 
"등록센터에서 줄을 30분 서 있다 이쪽으로 다시 서라 한 지 30분이 지났는데 또 저 쪽으로 가라고요?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이럴 거면 사전등록은 왜 하나요?"
 
‘2023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가 열린 첫날 풍경입니다. 17일 12시경 성남공항 인근은 교통 정체로 차량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어렵게 도착한 행사장 입구 등록센터에는 장시간 기다리다 지친 방문객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놀라운 건 직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줄 서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대체 스태프들은 왜 있는 거냐, 줄이 이렇게 긴 데 뛰어 다니는 사람 한 명 없다"는 고성이 나왔습니다. 
 
취재차 방문한 기자들의 불만도 높아졌습니다. 화를 내던 기자 몇 명은 그냥 돌아가기도 했는데요.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전체가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여직원 한명이 나타나 "기자분들은 먼저 들어가겠다"며 입구를 터 주었습니다. 등록 절차를 밟거나 목에 거는 형태의 출입 배지를 나눠주지도 않은 채로 말입니다. 대체 왜 줄을 한 시간 이상 서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이 너무 급해 군말 없 따라갔습니다. 
 
"목에 거는 배지는 어디서 받나요?"라고 질문하니 "안으로 들어가 프레스센터에서 신청하면 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행사장 내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프레스센터가 없었습니다. 기업별 부스와 편의점이 전부였습니다. '전시자 서비스센터'라는 곳이 있어 들어가 문의했는데 기자 방문증 지급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다른 데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돌다 'PR팀'이라고 쓰여진 천막 안으로 들어가 겨우 조직위원장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저처럼 지친 기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전시자 서비스센터에 가면 기자 출입증을 나눠줄 거란 말을 하는데 화가 치밀더군요. 분명히 제가 아까 가서 얘기했는데 "모른다고 하더라"라고 했더니 함께 가자며 기자들을 인솔했습니다. 결국 출입증 모양을 복사한 뒤 급조해 만든 종이 배지를 목에 걸고 전시관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남공항 인근 도착 후 2시간 반만에 들어간 행사장 안은 놀랍게도 휴대폰이 터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통신강국 아닌가요. 기업 부스 홍보 담당자들로부터 전시 설명을 들었지만 어려운 전문 용어는 행사장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설명 자료를 톡으로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부스에 가서 물어보니 전화 통화 자체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 척박한 환경 속에 기사 업로드를 위해 클릭만 30분 이상 해야 했습니다. 
 
기자와 관계자 방문일에 행사 진행이 이 정도였으니 일반인 관람이 시작되면 더하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반인 관람이 시작된 21일 토요일. 집에 있는데 ADEX 본부에서 문자 메시지로 긴급공지가 왔습니다. 인파가 많이 몰려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성료'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들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악플이 줄을 잇고 있더라고요. "주먹구구식 행사 개최와 진행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 하면 이태원꼴 날 뻔", "행사요원들이 서로 소통 안 돼 싸우고 개판", "알바생이니 묻지 말라는 사람부터 군복입은 사람들조차 나도 모르는 일이라니 최악 그 자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안내 표지판만 세워 놨어도", "한두번 하는 행사도 아닌데 갈수록 통제 수준이 저하되는 게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등의 내용입니다. 
 
기가 찬 행사는 불과 몇달 전에도 있었지요. 새만금 세계스우트잼버리는 운영 미숙으로 파행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제 행사 대응 역량에 대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었는데요. 
 
역대 최대 규모로 마무리 된 ADEX를 돌아보며 '행사의 품격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자 품(品)의 구조를 살펴보면 입구(口) 세 개가 합쳐져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입이 모여 있어 '품평하다'는 의미인데요. 상품의 수준을 말할 때 품질(品質)이라 하고, 사람의 수준은 품성(品性)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국제 행사에 대한 평가는 그 나라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ADEX 방산 계약 60억달러 규모'라는 허울보다 '품격'을 중시하는 행사 대응 역량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인터넷 화면 캡처)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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