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인천에서 왔어요. 4시간 걸렸습니다. 아이가 평소에 너무 좋아해서 새벽부터 나섰어요. 아이는 예선에서 떨어졌지만 진주까지 내려온 김에 여수 둘러보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 A씨(8세·남) 학부모
"새벽 6시에 동탄에서 출발해서 진주까지 왔어요.
무림페이퍼(009200)에서 하는 종이비행기대회는 처음 참가하는데 좋은 성적을 거둬 기분이 좋습니다. 주말마다 아파트 공원에서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 참가자 박서후씨(10세·남) 학부모
전국 각지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위해 경남 진주에 모였습니다. 조용하던 진주 시내가 혼잡해지자 행사장 가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슨 행사가 열리느냐고 물었는데요. 진주 대표 축제인 유등축제 때보다도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반응입니다.
4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2023 제4회 무림페이퍼 코리안 컵(KOREAN CUP) 종이비행기대회'에서 참가자가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경기장에 들어서자 비 예보가 무색하게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을 A4용지로 만든 흰색 종이비행기가 세차게 가릅니다. 큰 원을 돌며 춤을 추듯 비행하는가 하면 직선으로 멀리 날아가 잔디바닥에 꽂히기도 합니다. 참가자와 관람객들은 경기를 관람하며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4일 국내 유일의 '공식' 종이비행기대회가 4년 만에 열렸습니다. 무림페이퍼, 무림SP, 무림P&P가 주최한 '2023 제4회 무림페이퍼 코리안 컵(KOREAN CUP) 종이비행기대회'는 진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열렸는데요. 당초 비 예보에 주최 측의 고심이 깊었으나 경기를 응원하는 듯 경기 내내 비가 한 방울도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이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플라스틱 통을 들려 있었습니다. 통 안에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여러 종의 비행기 기종이 담겨 있었는데요. 종이가 눅눅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제습제도 필수품처럼 함께 자리했습니다. 종이비행기는 접는 방법에 따라 비행 양상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핀을 꽂아 고정해두는 경우도 왕왕 보였습니다. 평소 함께 연습했던 분신 같은 장비를 들고서 모두들 심기일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4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2023 제4회 무림페이퍼 코리안 컵 종이비행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의 종이비행기를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대회는 '멀리날리기', '오래날리기', '곡예비행기날리기' 총 3개 종목으로 치러졌습니다. 멀리날리기는 발사 라인부터 착륙 지점까지의 직선거리로 순위를 매기고, 오래날리기는 종이비행기를 날린 뒤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이나 땅·물체에 닿기 전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곡예비행기의 경우 대회장에서 배포한 곡예비행용 조립비행기 키트로 제작한 종이비행기를 이용해 루프비행(회전), 비행 시간 등을 측정했습니다.
종이비행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접는' 방법만 사용해야 합니다. 찢고 붙이거나 자르면 실격입니다. 풀과 테이프 등 접착도구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로 실격입니다.
슈퍼컵 멀리날리기 우승자는 이종민씨, 오래날리기 우승자는 이동재씨, 곡예비행날리기 우승자는 황채경씨입니다. 멀리날리기 유치부 1위는 강병훈씨, 초등부 1위는 정이현씨, 중·고등·일반부 1위는 조광민씨였습니다. 오래날리기 초등부 1위는 이동재씨, 중·고등·일반부 신무준씨, 곡예비행날리기 초등부 1위는 황채경씨, 중·고등·일반부 1위는 하태인씨입니다. 유치부는 오래날리기와 곡예비행기날리기 종목에는 참가할 수 없습니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하며 대체로 성인보다 높은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실제로 예선과 결선 후 연령 구분없이 치르는 왕중왕전인 '슈퍼컵'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는데요. 그동안 슈퍼컵은 진주리그와 전국리그로 나눠 치러졌지만 이번에는 모두 합쳐 진검 승부를 벌였습니다.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붙은 결과 3종목 중 2종목(오래날리기, 곡예비행기날리기)에서 초등학생이 슈퍼컵을 거머쥐었습니다.
(사진=무림페이퍼)
경기 내내 관람객들은 곧바로 낙하해 버리는 종이비행기에 탄식하다가도 체공시간이 길어지는 종이비행기를 보고 크게 환호했습니다. 자유롭게 비행을 하다가 관람객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여럿이었는데요. 행여나 비행에 방해가 될까봐 이들을 피하는 데도 관람객들의 신경이 집중됐습니다.
참가자들은 세계 대회나 무림페이퍼 온택트 챌린지(온라인 종이비행기대회)에서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준 선수의 이름을 이미들 알고 있었는데요. 종이비행기 멀리날리기 세계 기록 보유자인 신무준씨도 참가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참가자들은 고수가 등장할 때마다 그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기 바빴습니다. 경기 내용에 대한 분석도 잊지 않았습니다. "배면 비행이다, 하방각이다, 던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회전이 심했다" 등의 평가가 오갔습니다.
4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2023 제4회 무림페이퍼 코리안 컵 종이비행기대회'에서 아이들이 종이 풀장 '무해한 페이퍼풀'을 즐기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이희우 한국종이비행기협회장은 "세계적으로 종이비행기 경기가 있지만 다채로운 종목을 한번에 진행하는 것은 무림페이퍼 코리안 컵 종이비행기대회가 유일하다"면서 "앞으로 세계 대회로까지 발전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경기장 옆에는 친환경 체험 부스도 마련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종이 풀장 '무해한 페이퍼풀'은 올해 규모를 2배로 키웠습니다. 또 처음으로 천연 생 펄프몰드 그릇을 나만의 개성을 담아 꾸미는 '무해한 색칠놀이'도 선보였습니다. 비가 내릴 것을 대비해 준비했던 방수 종이 2000장은 '방수 종이비행기 공작소'에서 아이들의 체험에 녹였습니다.
진주=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