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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에서 화재가? 판결문 살펴보니…
입력 : 2023-11-13 오후 5:31:43
간혹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있지요. '어디 어디 지역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 얼마치의 재산피해 등을 입었다'류의 기사로 알 수 있지요. 하지만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웬만한 대형사고가 아니고는 지나치곤 합니다. 발화 원인으로 김치냉장고나 밥솥 등이 지목되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2020년 8월(화재 1)과 2021년 3월(화재 2) 각각 서울의 아파트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합니다. 두 사건 모두 피해가 크지 않았습니다. 일부 주방 벽면과 가재도구 등이 소실되거나 화염에 그을리는 정도였습니다. 해당 아파트들과 종합보험계약을 맺은 롯데손해보험은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했습니다. 두 사고 모두 발화원인이 밥솥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자, 롯데손보는 이 밥솥을 만든 쿠쿠전자에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합니다. 결과는 롯데손보의 일부 승소입니다. 제조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겁니다. (피고 책임 70%) 
 
판결문을 들여다볼까요.
 
화재 1에선요. 소방재난본부의 감식·감정·분석 결과와 화재 재현실험결과 등을 종합해, 최초 발화지점이 전기밥솥 내부로 추정됐습니다. 화재 2는 밥솥 주위 가전제품은 모두 전원선이 분리된 상태였고, 전기밥솥의 연소부위가, 외부 화염으로는 연소되지 않은 PCB기판의 특정부품인 점 등을 고려하면, 화재는 전기밥솥 내부 전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에 반해 피고인 쿠쿠전자는 전기밥솥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을 수 있어, 제조사에 화재 책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사건 각 화재가 전기밥솥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던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입증이 부족한 상태로, 피고가 제조해 공급한 전기밥솥에 결함이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없다. 설사 피고에게 일부 책임이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제조물의 결함이 직접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므로 책임이 제한돼야 한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판단했습니다. 먼저 대법원 판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제품의 생산과정은 전문가인 제조업자만 알 수 있는 상태에서, 그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하기에는 어렵다. 그래서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제조업자 측에서 그 사고가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을 입증하지 못한 이상, 제품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이 맞다."(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다16771 판결 )
 
재판부는 이 같은 판례를 바탕으로 두 사건을 판단했습니다.
 
"화재 1의 경우 거주자가 전기밥솥을 주방 싱크대 위에 뒀고, 다른 조리기구로 지은 밥을 위 전기밥솥에 옮겨 담고 보온 상태로 작동시키는 등 이 밥솥을 통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 2의 연소진행 상황을 보면 주변에 일부 소형가전과 칼 세트 등이 있었을 뿐 발열이나 점화원으로 작용 가능한 기계 장치 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연소 형태가 내부에서 외부로 진행된 점에 비추어 전기밥솥 PCB 기판 부품의 결함이 원인이 되어 2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피고의 책임을 70%로 제한했습니다(화재 2의 전기밥솥 제조날짜가 10년 이상 경과했으며, 평소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 알기 어려운 점 등이 고려됨). 
 
하지만 쿠쿠가 이에 항소했습니다. 2심에서는 어떠한 공방이 오갈지 주목됩니다. 2심에서는 어떠한 부분이 쟁점이 될지, 또 피고는 어떠한 주장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제조사를 상대로 한 구상금 청구 소송이 꽤 있지만, 제조사의 결함을 증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는 일부 제조사의 책임이 일부 인정된 것이라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서 가전제품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면 이를 소비자가 입증해, 제조사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듯 물건을 팔고 난 뒤 사고가 일어나자,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제조사의 모습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중요한 제품을 구입할 때, 회사의 가치관과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소송이 늘 그렇듯, 선고에 불복해 항소를 반복하다 시일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면, 그 지난한 싸움을 이겨낼 자가 없겠지요. 개인과 기업 간 싸움은 아마 그렇겠지만요. 이 사건은 다릅니다. 대형 보험사와 제조사, 즉 기업 대 기업 싸움입니다. 한 쪽이 쉬이 포기할 것 같지 않습니다. 결과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모델들이 쿠쿠 밥솥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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