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년 만에 다시 만나 양국 군의 고위급 소통과 실무 회담 재개, 펜타닐 원료 차단 등에 합의했습니다. 두 정상이 미중을 둘러싼 신냉전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속도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다만 대만 문제와 수출 통제 등 핵심 의제에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두 정상이 갈등의 일시 봉합을 택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첫날을 맞아 두 정상은 15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 '파일롤리 에스테이트'에서 회담을 시작했습니다. 두 정상은 행사장과 멀찌감치 떨어진 장소에서 4시간여 머물며 나란히 산책로를 걷고, 오찬까지 함께 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책임 있게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시 주석은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진핑, 대만문제 또 '레드라인'…"수출통제로 이익훼손"
두 정상은 회담을 통해 1년 넘게 단절됐던 양국의 군 고위급 소통,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전화통화 등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에서 사회적 해악이 심각한 마약류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화학 회사를 중국이 직접 단속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또 인공지능(AI)이 핵무기 명령이나 통제 등에 악용되는 사태 등을 막기 위해 AI의 위험성과 안전을 논의할 전문가 대화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기후회담도 재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대만 문제나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등 양국 갈등 현안에 대해서는 두 정상의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특히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와 같이 대만 문제를 양국 관계의 레드라인으로 설정했습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미국은 대만 무장을 중단하고 중국의 평화 통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앞으로 몇 년간 대만을 침공할 계획이 없다"며 무력을 사용할 조건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입장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고 미국은 현상 유지를 믿는다"며 중국이 대만의 선거 절차를 존중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시 주석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 대해서도 "중국 인민의 발전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항의하며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에 맞서는 데 사용될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수출 통제 조치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 정책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의 중국 수출은 강력하게 막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와 별도로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의 '파일롤리 에스테이트(Filoli Estate)'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확전 피한 '바이든·시진핑'…"전략 경쟁 불가피"
이번 회담에서 양국의 갈등을 일시 봉합한 데에는 각각 미국 대선과 중국 경제 적신호 등 리스크 관리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두 정상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APEC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에도 비공식 막후 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도록 방치하는 게 재선에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시 주석과 나는 위기가 발생하면 전화기를 들고 서로 직접 통화하자는 데 동의했다"며 양국의 관계 개선을 부각했습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한 기자가 '시 주석과 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독재자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1980년대 이래로 독재자였다"고 돌발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 주석 또한 국내 경제 침체에 따른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기업인과의 만찬에 참석해 "중국은 미국의 동반자이자 친구가 될 준비가 돼 있다"고 미국과의 협력 의지를 내비친 것도 국내 경제 상황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입니다. 내년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전임 트럼프 정부보다 현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전반적으로 두 정상 모두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며 당분간 '관리 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완전한 해빙과 협력 관계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회담을 통해서 양국 관계는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장기적인 경쟁은 불가피하다. 계속 전략 경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