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3년여 전 아파트 리모델링으로부터 시작됐어요. 2~3개월에 한번 꼴로 세탁실 역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관리사무소장은 구조변경을 한 세대 잘못이라며, 보상과 조사는 물론이거니와 기본적인 소통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상복합 아파트라 외관상 6층임에도 사실상 보통 아파트의 1층과 같아, 공동 배수관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지만 관리소장은 아파트 배관은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맞섰습니다. 수차례 얼굴을 붉힌 갈등 끝에 배관 검사를 했고, 관리소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답니다.
관리사무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나자, 직접 나서 아파트를 바꿔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입주자대표 선출(회장1·감사1·총무1·고문1)을 위해 모인 회의에는 관리소장의 무성의함과 관리 소홀에 불만을 갖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파트에 오래 거주했던 중년 남성들이 대표자가 되겠다며 나섰습니다. 남편은 이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총무가 됐습니다. 십여 년간 거의 변동 없던 입주자대표회의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후 아파트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어두침침했던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조명이 교체되며 환해졌고, 지저분하고 어두워 청소년들의 흡연장소로 전락했던 생활 쓰레기장 바닥이 보수되고 깨끗해졌습니다. 매달 납부하는 관리비와 직결되는 공용관리비도 손질되고 있습니다. 건설사 임원을 지냈다는 신임 회장은 '매의 눈'으로 관리비 집행 내역과 아파트 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다는데요. 최근 아파트 기계실에 정수기를 설치했다고 해요. 매달 관리사무소와 경비원들의 '물값' 명목으로 십여 만원씩 공용관리비에 청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회장이 알게 됐기 때문이죠. 역시 '청소용품 구매' 명목으로 매달 십만원 넘는 돈이 용역업체로 새어나가고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전세 세대가 많다는 동네 특성도 있지만 점점 공동체나 단체 생활에 참여를 꺼리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보편화되면서 관리소와 입주자 대표회의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대충대충', '대강대강', '몰래몰래', '최소비용'만 추구하며 아파트를 운영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공용관리비는 끝 모르게 오르기만 하고, 주민들은 제대로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비단 제가 사는 아파트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중시하는 '참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체득했습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됩니다. 참여와 감시만이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정당과 후보가 나의 삶과 생활에 직접적인 이득과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누구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직접 챙겨야겠습니다. 왜 침묵하면 안되는지 깨닫는 요즘입니다.
이보라 중기IT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