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의 얼굴에서 슬픔을 읽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고민을 읽어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고통을 읽어내는 것은 더욱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더 주저함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언제나 행복함과 사랑스러움이 묻어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국내 로맨스 장르의 대표이자 상징으로서 모든 감독들이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를 ‘뮤즈’라 부르겠습니까. 바로 배우 신민아 입니다. 그의 얼굴은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롭고 향긋한 내음을 전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을 통해 장르 영화의 색채를 끌어 내려 했던 작품들이 꽤 있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란 단어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의 얼굴이 풍겨내는 밝음의 감정이 너무도 강하고 짙은 탓에 그 반대를 끌어 내기가 쉽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그의 뿜어내는 ‘밝음’에 한 가지를 더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엄마’입니다. 그것도 ‘이 세상에 없는 엄마’입니다. 신민아는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딸입니다. 신민아의 얼굴, 밝습니다. 엄마가 죽었는데 딸이 웃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이건 남아 있는 딸과 떠나간 엄마의 보이지 않는 대화입니다. 그래서 딸인 신민아는 웃고 있습니다. 떠나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엄마는 화를 내고 있습니다. 이 모녀, 그저 ‘이 세상에 없다’란 것만 빼면 여느 모녀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게 투덕거리고 살갑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 속에 우리가 모르는, 그저 이들 모녀만이 알 수 있고 알고 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얘기에 우리 모두가 눈물을 쏟아내고 공감하며 ‘엄마’를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 ‘3일의 휴가’에서 신민아는 그런 과정과 그런 관계의 얘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 배우가 만들어 내는 이 얘기에 공감 못할 가슴은 없을 겁니다. 신민아와 함께 한 ‘3일의 휴가’. 풀어 내 드리겠습니다.
배우 신민아. 사진=에이엠엔터테인먼트
신민아의 마지막 영화는 2020년 영화 ‘디바’였습니다. 경쟁자에 대한 질투와 그 질투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서 벌어지는 파국의 상황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데뷔 이후 가장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한 모습의 신민아였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3일의 휴가’에선 정 반대의 이미지와 감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정 반대의 이미지와 감정이라고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기도 한 세상에 남은 딸 ‘방진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는 ‘특별하다’는 단어 대신 ‘소중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요즘 너무 강하고 센 영화들이 너무 많잖아요. 근데 ‘3일의 휴가’는 사실 너무 뻔해서 어떤 흐름으로 갈지 다들 알고 있지만 그걸 놓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보편적인 감정이요. 우리가 공감이라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었죠. 너무 소중한 걸 놓치고 사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 소중함이 우리에게 언제나 있을 것이라는 ‘엄마’에 대한 얘기였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따뜻한 시나리오였어요. 배우로서 모녀 관계의 미묘함을 연기해 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요.”
배우 신민아. 사진=에이엠엔터테인먼트
‘3일의 휴가’ 속 신민아가 연기한 ‘방진주’와 그의 ‘떠 나간 엄마’ 박복자를 연기한 김해숙. 극중 모녀 관계인 복자와 진주의 관계는 여느 관계와 다를 바 없으면서도 크게 같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선 날이 바짝 선 위태로움이 느껴졌고, 어떤 모습에선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꼭 나와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고 했습니다. 모두가 이들 모녀의 관계에서 자신과 엄마의 관계를 떠 올리게 될 것입니다. 신민아는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영화 속 복자씨와 진주, 두 사람과 달리 전 실제 엄마와는 너무 친구처럼 지내요. 굉장히 전화 통화도 자주하고 그래요. 꽤 오래전부터 이럴 수 있었던 게 제가 데뷔를 하고 나서부터 전 엄마가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 보여졌어요. 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그렇게 보이고 나니 엄마의 모든 게 달리 보였어요. 그래서 극중 진주의 모습이 참 안타까웠어요. 가까운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서운함이 있고, 그 서운함은 사실 굉장히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그걸 생각하니 진주와 복자씨 이들 모녀의 관계가 너무 안타까웠죠.”
배우 신민아. 사진=에이엠엔터테인먼트
이런 안타까운 감정, 그리고 여러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3일의 휴가’ 속 모녀 관계. 자신이 연기한 ‘진주’의 모든 것이 현실감 넘치게 그려진 건 스스로의 캐릭터 연구와 소화력에도 큰 힘이 있었겠지만 함께 호흡해 준 대선배 김해숙의 존재감이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런 설명에 신민아는 찰나의 고민도 없이 ‘너무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국민 엄마’란 칭호가 너무도 당연한 김해숙의 엄마 연기에 신민아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딸 진주가 됐답니다. 물론 특별한 설정 때문에 촬영 중 웃지 못할 상황도 많았답니다.
“그냥 선생님의 눈빛만 봐도 모든 감정이 전달이 됐고 또 내 안에 나도 모르는 감정이 튀어 나올 정도였어요. 어느 순간 제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실제인지 모를 감정까지 느낀 적도 있었어요. 선생님의 존재감이 너무도 거대 했었죠. 그래도 좀 웃겼던 건 선생님은 ‘귀신’이시라 제가 안보이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냥 보시는 그대로 ‘안보이는 척’했었거든요. 저희는 평생을 상대가 얘기를 하면 리액션이 자동으로 나오는 훈련을 했던 사람들이라. ‘안 보여야’ 하는데 자꾸 선생님이 ‘진주야!’라고 부르시면 몸이 움찔하고 눈이 돌아가서. 하하하. NG도 좀 제가 냈었죠(웃음).”
배우 신민아. 사진=에이엠엔터테인먼트
‘3일의 휴가’는 음식 장면으로도 보는 사람들의 군침을 흘리게 하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극중 진주는 떠나간 엄마의 레시피를 활용해 스팸 김치찌개와 뜨근한 잔치 국수, 그리고 무를 넣은 소를 가득 채운 만두, 여기에 직접 콩을 갈아 만든 두부까지. 보는 순간 내내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음식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모두가 신민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입니다. 신민아는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일단 음식 장면에 비밀이 좀 있는 듯 했습니다.
“제가 만들었다 안 만들었다. 제가 말씀은 안 드릴께요. 하하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음식과 그렇게 친하지는 않습니다(웃음). 극중 등장한 음식 중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는 ‘무만두’에요. 진짜 너무 맛이 있어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정말 포식을 했어요. 진주가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면서 만드는 장면처럼 저에게 기억나는 엄마의 음식은 ‘토란국’이에요. 어릴 때부터 먹어 버릇을 해서 지금도 꽤 좋아해요. 식감이 사실 좀 그래서 애들이 잘 안 먹는데, 전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되게 잘 먹었어요. 지금도 그 맛이 생각이 나요(웃음).”
배우 신민아. 사진=에이엠엔터테인먼트
‘3일의 휴가’ 개봉 이후에도 촬영을 앞둔 작품이 많습니다. 그 이전에는 ‘갯마을 차차차’부터 ‘디바’ ‘우리들의 블루스’ 등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 1984년생으로 내년이면 40세입니다. 아직도 너무도 앳된 모습의 신민아가 벌써 이렇게 불혹에 접어 들었단 게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3일의 휴가’를 보고 나니 그 깊고 진한 연기가 어디에서 나오게 됐는지 이제는 좀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앳되고 밝은 신민아, 우리에겐 그저 로맨스 장르의 신민아. 이 배우에게 왜 이토록 깊고 진한 연기의 맛이 베어 있었는지를.
“아유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웃음). 로맨스 장르에서만 절 기억해 주시는데 저도 의외로 여러 장르의 여러 캐릭터를 해왔어요. 배우로서 다양한 작품의 다양한 배역을 하고 싶은 욕구와 갈증은 여전하죠. 그 욕구와 갈증 속에서 제가 이제는 좀 더 편하고 행복하고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 정도는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좀 어릴 때는 너무 나를 몰아 세운 적도 있는데, 저 스스로의 몸과 마음도 건강해야 좋은 연기도 나올 수 있잖아요. 배우로서의 일도 그렇지만 내 마음도 좀 잘 돌 보자는 게 요즘 바뀐 저의 루틴 같아요. 그 시작의 첫 번째가 ‘3일의 휴가’일 겁니다. 좋은 영화 많이 봐주세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