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세아그룹 산하 세아베스틸에서 하청 노동자 2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회사는 원청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물어야 할 고용노동부도 세아베스틸을 감싸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노동계는 세아베스틸에 사고 책임을 제대로 따져야 한다며 고발을 검토 중입니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11월9일 전북 군산시 소재 세아베스틸 공장에서 철거업체 직원 2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노후화된 집진기(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포획하는 장치)를 철거하기 위해 크레인 위로 올라가 작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진기가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와이어가 끊어졌고, 시설물 일부가 크레인을 덮치면서 노동자 2명이 7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전북 군산시 세아베스틸 공장 전경. (사진=세아베스틸)
세아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추락 사고를 당한 노동자 2명 중 1명은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당일 퇴원했습니다. 더 크게 다친 다른 1명은 응급실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고, 4주가량 입원했다가 퇴원했습니다. 그는 현재는 후유증을 치료하고자 한방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후입니다. 세아베스틸은 사고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만 냈을 뿐,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지적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대해 세아그룹 관계자는 "해당 사고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치료비 등 금전적 지원 유무 여부는 별도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아베스틸이 무대응으로 나설 수 있는 데는 고용부 탓도 있습니다. 고용부 군산지청은 세아베스틸이 '공사 발주자'일 뿐이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고용부 군산지청 관계자는 "세아베스틸은 이번 철거공사에서 발주자로 돼 있어서 하도급 관계로는 볼 수 없고, 처벌할 대상도 아니다"라면서 "철거업체에도 직접적으로 취해질 조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고 후 세아베스틸은 기존 철거업체를 새 업체로 교체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정의)를 보면, "'도급'이란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을 말한다. '도급인'이란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를 말한다. 다만, 건설공사 발주자는 제외한다"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고용부가 세아베스틸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근거입니다. 결국 사고는 났는데 누구도 책임이 없는 희한한 상황이 생긴 겁니다.
9월20일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고용노동부 군산지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전북본부)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세아베스틸을 산업안전보법 위반으로 고발 검토 중입니다. 세아베스틸 공장에서 이 회사 기물을 철거하다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세아베스틸을 원청으로 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명목상 발주자라서 책임 소재를 피하게 되면 앞으로 비슷한 유형의 추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내놓습니다.
김한미르 민주노총 전북본부 조직부장은 "이번 추락 사고는 실질적 원청의 작업장에서 원청이 사용하는 기물을 해체하다가 발생한 사고"라며 "원청의 책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원청이 관리·감독을 강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모든 위험한 일은 실질적 하청에서 뒤집어쓰게 될 것"이라며 "하청은 돈 때문에 죽음을 외주 받고 사람 목숨값으로 일하는 현상이 팽배해질 것"이고 경고했습니다.
노동계에 따르면 세아베스틸은 그간 사고가 빈번했습니다. '죽음의 세아베스틸'이라는 오명까지 나돌 정도였습니다. 세아베스틸 군산공장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3건의 중대재해가 일어나 노동자 4명이 숨진 바 있습니다. 지난 3월29일부터 4월7일까지 이뤄진 고용부 광주지방청 특별근로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무려 569건 적발됐습니다. 지난 10월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김철희 세아베스틸 대표이사가 출석, 사망자 유족들에게 사과해야 했습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세아베스틸과 고용부 군산지청 간 유착관계에 관한 소문이 많다"고 의심했습니다. 고용부 군산지청은 이번 추락 사고에 대해 '세아베스틸은 발주자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당사자입니다.
김철희 세아베스틸 대표 등 증인이 10월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동 전문가들은 이번 추락 사고에 대한 고용부의 해석이 협소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세아베스틸이 도의적인 차원의 책임이라도 져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당연히 실질적 원청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발주라고 할지라도 공장 외부에서 작업한 것도 아니고 공장 안으로 들어와서 일하다가 다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설비·시설을 책임지는 사람은 안전까지 책임지도록 했다"며 "세아베스틸이 발주자라고는 하지만 이번 철거공사는 직접적 공장 설비에 관한 일이고, 그런 점에서 세아베스틸이 도급에 가까운 실제 안전을 책임졌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고용부가 법을 너무 소극적으로 해석했다"며 "계약서상 관계나 명칭이 아닌 실질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하도급 관계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승규 공인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발주자 책임을 면해주는 건 아파트 건설 때처럼 발주자는 기획만 하고 실제 공사엔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고는 그런 의미의 발주가 아니라 세아베스틸 사업장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관리 부서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고용부가 '발주자라서 책임이 없다'고 판단할 때 꼼꼼하게 따졌을까 의문이고, 고용부 판단이 납득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