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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샘터'에서
입력 : 2023-12-19 오후 4:50:14
전시 전문가도, 유명 작가도 아닌 악동뮤지션 이찬혁 씨가 여는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정까지 폰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미 크리스마스까지 전부 매진이 돼버린 전시 '영감의 샘터' 취소표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약일 전날까지만 수수료 없이 취소가 가능한 터라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다가 누군가가 취소한 표를 겨우 주워 그의 전시장에 드디어 발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사진=변소인 기자)
 
전시장 근처에 어슬렁거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약 시스템이 있기 전 그저 재미로 전시장 인근을 지나다 조기 마감되는 그의 전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는 줄서기조차 거부당했지만 이번에는 운 좋게 전시를 보러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그의 작품을 보려한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일단 인기 있는 전시이니 사람들의 행렬에 가담해 보기로 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비석이 맞이하는 전시장은 입구부터 마치 귀신의 집이라도 들어가듯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이찬혁 씨가 온통 도배돼 있었습니다. 벽에 떡 하니 걸린 작품뿐만 아니라 벽지, 장난감, 영상에 모두 이찬혁 씨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보면 모두 그 안에 작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자신의 얼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은 전시공간에 수많은 같은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게 되는 그의 얼굴에 연신 실소가 새어나왔습니다. 작품은 꽤나 꼼꼼했고 탄탄했습니다.
 
(사진=변소인 기자)
 
가장 놀라운 것은 관람객들의 태도였습니다. 저는 전시장소가 이찬혁 씨의 독특한 분위기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배경의 용도로만 활용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사진용, 인증용으로 방문하는 SNS 속 핫플레이스 수준에 머물 줄 알았던 거죠. 하지만 관람객들은 아기자기한 전시를 빠짐없이 구경하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즐겼습니다. 자신을 담기 바쁠 줄 알았던 그들의 스마트폰 카메라는 작품을 향했습니다. 저 역시 시쳇말로 '킹받는다'를 읊으며 시작한 관람이 어느새 진지한 작품 감상으로 변해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전시 공간을 찾은 이들 모두 꽤 더럽다고 느낄 법한 '이찬혁이 뱉은 돌'을 허리까지 숙여가며 살폈습니다.
 
과거 이찬혁 씨가 괴기한 춤을 추고 삭발을 하며 노래를 부를 때 저는 말리고 싶었습니다. 지나친 관심을 요구하는 슬픈 구애의 몸짓같아 지켜보기가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해가 거듭되고 그의 괴짜미가 진해질수록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지'하며 감탄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삶'에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이르렀습니다. 장난스럽게 방문했다가 감명을 받은 제 모습에 제가 더 놀라고 있습니다. 장황하게 적었습니다만, 이상은 '가볍게 놀러갔다가 정성스러운 괴짜짓에 치인 후기'였습니다.
 
변소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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