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만에 진도를 마주했습니다. 이달 초 진도에서 열리는 '2023 전국 여성 CEO 경영연수'에 취재차 들렀습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매년 전국을 돌며 여성 기업인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행사를 여는데, 올해는 진도에서 열렸거든요. 고장의 명물인 진돗개 모양의 건축물도 다시 마주했습니다. 이날 한겨울이었음에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누군가 나지막이 '나도 알아, 그날을 기억하고 있어' 라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행사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됐습니다. 체육관 곳곳에는 여성 경제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소식을 나누고 단합을 도모하며 한국경제의 주역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진도와 전라도를 이끄는 정부와 경제 리더들이 모여 행사 개최를 축하하고 여성 경제인들을 응원했습니다.10여 년 전에도 그대로였을 무심한 천정 조명 위로 2014년 4월의 기억이 오버랩됐습니다. 진도실내체육관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숙식을 하며 사고 소식을 기다리고 접하던 곳이었습니다. 행여 내 자식 살아있다는 소식이 들려올까, 아니면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진도는 제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습니다. 그동안 진도에 갈 한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외면했습니다. 참사의 원인이 과적과 선체 증축 혹은 운항 미숙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었는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유야무야 마무리되며 '명백한'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상황을 취재했던 기자조차 이해 안되는 일들이 벌어졌고, 결국 제대로 봉합되지 않았습니다. 300여명이 사라진 사고 현장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었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스러져간 피해자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2014년 4월18일 찾은 진도군청과 진도실내체육관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체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수색을 촉구했고, 명확한 지침을 받지 못한 당국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팽목항. 인양된 시신들이 하나둘 육지로 전해졌던 곳입니다. 당국자들이 하나둘 모여 비밀작전하듯 천막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시신 안치소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어요. 어디를 향해야 할지도 모른 채 표출되는 분노와 갈등,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뒤엉킨 진도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사회적 재난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무능만을 드러냈던 정부의 민낯은 평온하게 뛰던 심장을 지금도 다시 내달리게 합니다.
당시 일주일간 짧은 취재를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와 그들에게 제를 올렸습니다. '한없이 미안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고 이후 사회가 바뀌었나 자문해 보지만 그 때와 별반 나아진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은 저뿐일까요? 사회적 재난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에 안 찰 뿐, 아마 사회는 달팽이처럼 아주 더디게 조금씩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내년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됩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아픔의 당사자가 될 수 있었던 세월호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고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보라 중기IT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