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따뜻한 무관심'을 원하는 자
입력 : 2023-12-26 오후 4:46:44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은 언론이 '따뜻한 무관심'을 주길 원합니다. 아니 정치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일견 모순되는 단어처럼 들리는 이 표현은 기업 홍보팀을 만날 때 종종 기자들이 듣게 됩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쁜 소식엔 관심 갖지 말고 좋은 소식에만 관심 가져 달라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이라니요. 적어도 기업을 '홍보'하는 게 업무인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했죠.
 
크고 작은 기업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다 보니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방점은 '무관심'에 있었죠.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서 화재가 나든, 노조와 분쟁이 있든 언론이 '무관심'하면 큰 사건은 작게, 작은 사건은 아예 없는 일이 되는 거죠.
 
기자들은 다른 기자들보다 먼저 정보를 얻거나 제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깊이 파고들어 단독 또는 특종기사를 씁니다. 그럴 때 맞딱드리게 되는 것이 해당 기업 홍보팀 직원의 읍소 또는 협박이죠. 
 
기사 제목에 있는 단어 수정 요구부터 가장 중요한 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요구도 받습니다. 기자로서 해당 기업의 반론도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카톡을 씹는다거나 오는 전화를 안 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협박'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당신이 기사를 써서 내가 죽겠다"거나 "우리 회사에 치명적인 기사를 쓰다니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의 발언, 메시지는 모두 협박에 해당합니다.
  
수위를 벗어난 말에 재차 그 말의 뜻을 물으면 "농담이었다"는 '갑분싸' 답변이 돌아옵니다. '협박'이 한순간에 '농담'으로 변해버리는 찰나죠. 더불어 저는 '농담도 구분 못하는 기자'로 어딘가의 단톡방에서 매도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따뜻한 무관심'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자, 독자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정치인에게도 말이죠. 견제가 없고 감시가 없다면 누구나 한순간의 이익 앞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따뜻한 무관심'을 원하는 자들에게 이 말을 전합니다.
 
"'뜨거운 관심'을 갖고 지켜볼게요"라고 말이죠.
 
유태영 기자 ty@etomato.com
유태영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