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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공수처)'빈수레' 공수처…민주당도 책임
'가시적 성과물' 약속 무색한 성적표
입력 : 2023-12-27 오후 4:39:37
 
 
[뉴스토마토 윤민영·유연석 기자] 1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최종 심사 기간으로 평가받은 올해마저 공수처는 유의미한 수사 성과를 못 내며, 존재 이유를 스스로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수사 독립기관'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만큼 인력과 기소권 제한에 부딪힌 검사들은 하나둘씩 공수처를 떠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정치 편향과 인사 전횡을 지적하는 내부 고발도 불거졌습니다.
 
이런 중에 차기 공수처장 인선마저 논의가 공전하며 조직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공수처가 이런 상황까지 오는 데에는 졸속 법안으로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이고, 각종 부작용 속출에도 고발만 남발하며 제도 개선에는 무신경했던 민주당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①“가시적 성과물 내놓겠다” 약속했지만
 
“올해를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 무엇보다 올해는 국민 앞에 크든 작든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는데 모든 역량을 경주하겠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올해 1월19일 경기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마지막 임기 1년을 앞두고 이같이 공언했습니다.
 
그는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에는 “연내에 나올 성과가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조금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올해가 나흘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인데도 실적을 하나도 내지 못했습니다.
 
2021년 출범 이후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은 모두 다섯 차례인데 모두 법원으로부터 기각됐습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구속영장 발부율은 81.4%에 달하는 데 비해, 공수처는 단 한 건도 발부로 이어진 사례가 없습니다.
 
기소 성적표 역시 초라합니다. 직접 기소한 사건은 8건이지만 여러 혐의가 중복돼 실제 사건 수로 따지면 고발사주 의혹 등 3건에 불과합니다. 이 중 1심 재판이 끝난 2건은 모두 무죄로 결론 났습니다. 나머지 1건인 손준성 검사장의 고발사주 의혹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입니다.
 
김 처장이 임기 만료 전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던 전현희 전 국민권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 의혹이나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도 사실상 임기 내 결론을 내기엔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김 처장의 임기는 앞으로 20여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②인력이탈에 내부 폭로…처장 인선마저 난항
 
안 그래도 부족한 수사력이라고 지적을 받는데 수사할 검사들마저 떠나고 있습니다. 출범부터 함께한 1기 검사 13명 중 남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합니다. 떠나는 사유는 각각 다르지만, 어찌 됐든 지속적인 인력 이탈은 수사 난항으로 이어지고, 버거운 업무에 다시 인력이 떠나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1년 내내 이어지는 인력 교체에 업무 마비도 잦았다는 토로도 나왔습니다.
 
이런 중에 차기 공수처장 인선마저 제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달 8일부터 이달 20일까지 네 차례 회의를 개최했지만 8명의 후보 중 윤석열 대통령에게 추천할 후보 2명을 추리지 못했습니다. 후보추천위는 28일 5차 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계속되는 내부 이견으로 쉽사리 결론이 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도 제기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여당인 국민의힘은 공수처 설치를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2019년 공수처 설치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을 때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지연)에 나서며 법안 통과를 반대했습니다.
 
시작부터 삐걱대며 3년 내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비판은 결국 조직 내홍으로 터졌습니다. 공수처의 김명석 부장검사가 내부의 ‘정치적 편향과 인사 전횡’을 주장하는 폭로성 글을 언론에 기고하면서 파장이 일었습니다. 공수처는 김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고, 여운국 차장검사는 개인 자격으로 김 부장검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수사력 부족, 인력 이탈, 내부 갈등 등 삼중고에 휩싸인 공수처에 그나마 중심을 잡아줄 수장마저 부재한 상황이 되면 공수처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지금보다 더욱 표류하게 될 거라는 우려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옵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1월19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출범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③ 수사 범위 두고 검찰에 소극적 태도
 
공수처법 25조2항을 보면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 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야 합니다. 또 공수처법 24조1항에 따르면 공수처와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가 중복되면 공수처창은 수사의 진행 정도와 공정성 등을 따져 이첩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즉 고위공직자의 혐의를 두고 검찰과 공수처가 모두 수사를 하게 될 경우, 공수처 소관의 수사는 타 수사기관이 이첩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정섭 검사 사건은 검찰과 공수처 간 사건 이첩을 놓고 갈등한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지난달 이원석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에서 열린 월례회의 때 이 검사 사건에 대해 '엄정 대응'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는 검찰 손으로 이 검사 사건을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검사 사건은 공수처도 공수처장 직속 특별수사본부에 배당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에 공수처는 검찰이 이미 수사에 들어간 사건이므로 지켜본다는 입장을 취했는데요. 공수처는 직무 관련성이 있는 혐의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곤 하지만, 검찰과 공수처가 바라보는 범죄 인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가 생각하는 인지는 상식적인 인지이고 검찰에서는 인지의 개념이 엄격하다"고 말했습니다.
 
공수처의 이러한 입장은 이첩요청권을 절제해 사용하겠다는 약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의 이첩 요구권을 담은 공수처법 24조를 '독소조항'이라며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어, 이를 의식해 검찰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10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수처가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절제해서 행사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정섭 검사의 사례로 볼 때 일부 혐의는 공수처에서 이첩할 순 있지만, 공수처장 판단에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독립성이지만 사실상 다른 수사기관으로부터 인지 여부나 범죄가 될만한 단서를 넘겨 받지 않으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④‘설치’만 하면 그만? 사실상 ‘방치’ 상태
 
공수처가 이러한 상황까지 내몰린 데에는 민주당의 탓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공수처는 검찰 권력을 견제하겠다는 목적으로 민주당 주도하에 출범했습니다. 사실상 산파 역할을 한 게 민주당인데, ‘설치’에 쏟았던 적극적 태도에 비하면 ‘운영’에 관해서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8월 김진욱 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수처법 명칭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지 않나. 그러면 설치가 문제가 아니라 운영을 할 수 있게 최소한의 인원이 돼야 한다”고 불만을 표했습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검사 정원은 25명에 불과합니다. 안 그래도 지역 소규모 검찰청 수준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출범부터 지금까지 정원을 꽉 채운 적이 없습니다. 수사관 정원은 40명 행정인력 정원은 20명입니다.
 
오병두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는 지난 8월 진행된 ‘공수처 수사·조직역량 강화’ 학술대회에서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 공직자는 7000명에 달하고, 판사·검사에 대한 고소·고발 건수는 3000건”이라며 “현실적으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기엔 제약이 많다”고 짚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정책능력진흥원이 발표한 공수처 수사 및 조직 역량 강화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공수처 정원은 85명에서 170명으로 2배 가량 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됐습니다. 검사 40명, 수사관 80명, 행정 인력 50명이 적정 인력으로, 지금의 2배 수준입니다.
 
공수처의 정원을 확대하려면 법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 도입 단계부터 완강한 반대 입장이었기에 정원 확대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성과로 존재 이유부터 입증하라고 요구합니다.
 
적은 정원이 밀려드는 업무량을 감당 못하고, 결국 구성원들의 잦은 조직 이탈로 이어졌는데요. 이제는 정원이 남아돌아도 검사가 오지 않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는 또 업무 환경의 악순환으로 이어졌지만 정작 눈에 띄는 고발건들은 대부분 민주당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공수처 정원 확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은 정작 사태를 관망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수사 인력 증원을 골자로 한 공수처법 개정안이 야당 중심으로 여럿 발의돼 계류 중이지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가 요원합니다. 그 사이 공수처는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습니다. 새 처장이 온다 해도 이 같은 현실에선 공수처가 기대에 걸맞은 역할을 해내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2022년 8월 3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새 로고를 반영한 현판이 걸려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유연석 기자 min0@etomato.com
 
윤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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