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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외교의 출발점 '3자 변제안', 지속 가능?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강제동원 판결 2·3차도 승소, 국외 피해자만 21만 명
입력 : 2024-01-05 오전 6:00:00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 등이 지난 달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 선고가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윤석열정부의 대외정책은 한미일 (준)동맹을 통한 중국 압박과 북한 견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그대로 수용한 것입니다. 때문에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했고 그 출발점이 지난해 3월 6일 나온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이었습니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 중공업 같은 일본 전범기업들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 정부가 이를 부정하자 윤석열정부가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는 명목 아래 일본 기업이 아닌 한국 행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자금으로 대법원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겠다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물컵에 절반 이상이 찼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으나, 이는 일방적인 희망일 뿐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렇습니다. 일본제철 등은 물론이고 다른 일본 기업들도 팔짱 낀 채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한일 청년들을 위한 ‘미래파트너십 기금’도 한국의 전경련(현 한경협)과 일본이 게이단렌이 각각 10억원을 내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배상책임이 종료됐다는 겁니다.
 
피해자지원재단 기금 41억…2차 승소에 이미 바닥
 
재단이 3자 변제를 위해 조성한 기금은 포스코 등이 낸 41억원에 불과합니다. 재단은 2018년 10월 1차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15명 중 3자 변제안을 수용한 11명에게 25억원 정도를 지급했고 정부안을 거부한 4명을 위한 10억원 규모의 공탁금을 제외하면 남은 돈은 약 5억원뿐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21일에 대법원 2차 판결에서도 11명이 승소했습니다. 1인당 배상금이 5000만원~1억 5000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재단 기금으로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이어 28일 3차 판결에서도 히타치조센 피해자 1명 등 17명이 또 승소했습니다. 히타치조센을 상대로는 처음으로 배상 확정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로써 정부가 제3자 변제를 적용해야 할 대상은 총 43명으로 늘었습니다.
 
지난달 21일 2차 판결은 일본 기업들이 주장했던 소멸시효 만료 주장을 대법원이 배척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비로소 법적 구제가 확실시됐기 때문에 그 이전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소멸시효 만료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가로막은 족쇄가 완전히 풀린 셈입니다.
 
현재 일본 가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 소송은 60여건이고, 이중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은 4건입니다. 그런데 강제동원 전체 피해자 규모에 비하면 이는 ‘새 발의 피’조차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현재까지 정부가 공식 인정한 국외 피해자들만 21만6992명입니다.(2016년 기준). 1인당 1억원씩만 잡아도 21조원이 넘습니다.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의 규모는 648만8467명에 달합니다. 이 중에는 중복동원된 사례도 있고 강제동원 입증이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애초 정부가 3자 변제안을 준비한다고 알려질 때부터, 배상금 규모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요한 반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대안 마련 쉽지 않은 정부…구상권도 살아있어
 
물론 외교부는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앞으로 재단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고집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글로벌 재벌기업 회장들을 일렬로 세워서 떡볶이를 먹이는 정부이니 방법이 있을까요? 액수도 너무 큰 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사과다운 사과도 받지 못한 3자 변제안에 대한 국민 여론이 워낙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칫 잘못 돈을 냈다가는 배임이나 제3자 뇌물죄 논란에 휘말리기 십상입니다.
 
정부로서는 법적인 문제도 심각합니다. 공탁에 대한 구상권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3자 변제안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해서 채권을 소멸시키려 했으나. 법원은 12건 전체를 불수리했고 이에 대한 정부의 이의신청 역시 모두 기각해버렸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뒤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을 안심시키기 위해 3자 변제 이후 일본 기업들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하기 않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겁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해 3월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피고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한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 "(이를) 조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책무"라고 했으나, 현재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윤석열정부 대외정책의 시작점인 3자변제안이 파탄 직전 상황에 처한 겁니다. 3자 변제안 유지 여부를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3월 16일 친교 만찬을 마치고 도쿄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 정부 오만이 가능한 이유는…
 
일본 정부는 21일과 28일 판결 때 모두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해 유감을 표하고 항의했습니다. 윤석열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태도가 확고합니다. 한국의 3권 분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왜 이런 오만이 가능할까요?
 
지난해 말 일선 부대에 배포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가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서술해 전량 회수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원식 국방부 장관 본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육성으로 “독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윤석열정부 외교안보 분야 핵심인 김태효 국가안보실1차장은 "일본이 한반도 유사사태를 자국의 유사사태로 인식하고 이에 개입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된다는 것은 한반도 안보정세에서 평상시 대북 억지력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 : 미·일 신방위협력 지침을 중심으로> 2001년 논문)는 '자위대 한반도 개입론자'입니다. 윤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지난해 4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며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공식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2023년 내내 한국은 일본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습니다.
 
아, 하나 빼먹을 뻔했네요. 지난달 25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로 중국이 수입을 금지한 가리비를 한국 등에 판매를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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