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사진=연합뉴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가 불발된 후 처음으로 6일 부산을 방문해 "부산은 다시 시작한다"며 각종 지원책을 약속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 함께 뛴 기업 총수들을 대동하고 제시장 길가에 서서 떡볶이를 먹고, 이어 부산의 대표 향토음식인 돼지국밥을 함께 먹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윤 대통령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정신 승리로 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총선이 불과 5개월 남았으니 윤 대통령이야 그렇다 치고, 왜 세계에서 제일 바쁜 재계 총수들까지 부산까지 떼로 불러 병풍을 세우는 건가요?
부산 엑스포 유치전 참패는 졌잘싸와 돼지국밥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서는 안 되는, 한국 외교 흑역사 중에서도 앞머리에 올라갈 사건입니다.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 이래 이런 국제적인 수모를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한국만 확증 편향…외교·전략·정보 모두 엉망"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 외교안보 매체 <디플로매트>는 4일 자 "한국의 세계 엑스포 유치 실패,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하도록 만들다"(South Korea’s Failed World Expo Bid Sparks President Yoon’s First Apology) 기사는 현재 윤석열정부의 외교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기사는 "대부분의 외부관찰자들은 리야드가 (다음 엑스포 개최지로) 선택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뉴스나 언론 매체의 기사 등도 리야드가 유리하다고 봤다"고 표결 전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한국 정부와 언론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한국인들이 이걸 믿었다"며 "집단적 편견, 확증편향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집단편견과 확증편향에 빠져 있고, 이 때문에 국민들도 속았다는 힐난입니다.
이어 "(사우디 리야드 119표, 부산 29표) 이렇게 큰 표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세계 엑스포 유치 투표는 한국의 외교, 전략, 정보 모두 엉망이었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비판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기를 제외하고 한국 정부가 외신에 이렇게 조롱성 혹평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요?
윤 대통령의 '글로벌 중추 외교'에 대해서도 "일부 만남과 무기 거래를 제외하면 그의 외교적 관심은 대부분 미국과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고 미·일 편향외교를 지적했고, 특히 중국과 관련해 "윤 대통령과 중국간 갈등으로 중국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긍정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아프리카를 소외시켰으며, 중국은 아프리카와 남미 일부 국가에 부산 지지를 철회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를 "우리 외교의 실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합니다. '165개국 중 29표'가 현재 우리의 외교력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결과는 또 마찬가지일 겁니다.
'징비록'을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제대로 징비(懲毖)하려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감사원 감사부터 해야 합니다. 문재인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검증체계 문제까지 들여다 봤던 감사원이니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또 국회도 전면적으로 국정조사에 나서야 합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 외교안보 매체 '디플로매트'가 4일 "한국의 세계 엑스포 유치 실패,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하도록 만들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사진=디폴로매트 홈페이지)
그렇게 해서 우선, 유치 결정 과정부터 되짚어야 합니다. 아시아 그중에서도 같은 동북아권인 오사카가 2025년 엑스포를 개최한다는 점에서 부산 유치는 구조적 불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또 이미 선진국 반열인 우리에게 엑스포가 온 나라가 매달릴 정도로 경제 효과가 있느냐는 근본적 의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온 나라가 매달릴 정도로 집중하게 만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선택적 수집·보고' 정보의 속성…"'불통' 윤 대통령은 더 심했을 것"
두 번째로 처참한 정보 실패의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표계산에 실패했냐는 겁니다. 51대 49로 따라붙었느니, 막판역전이 가능하다는 등 어처구니 없는 '정보'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두세 달 전부터 현장 실무선에서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부산은 확실한 2등'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결선투표까지 가지도 못했고, 엑스포 개최 경선 역사상 3곳 이상 도시 도전 투표에서 1차 투표에서 개최지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결국 전 국민이 속았습니다.
셋째, 윤 대통령이 전면에서 진두지휘를 하게 된 과정도 밝혀야 합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속은 '상황으로 보이는 전체 과정을 규명해야 합니다. 현대 세계 외교사의 증인인 고 헨리 키신저는 그의 대표작 '외교'(Diplomacy)에 "정보당국은 정치 지도자들이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현실세계에서 정보평가는 대개 정책결정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기보다는 정책결정을 따른다"고 썼습니다. 수요자 즉, 최고지도자가 원하는 정보만 수집·보고된다는 것이 정보의 속성이라는 겁니다. 특히 윤 대통령 같은 불통형 지도자에게는 이런 현상이 더 심했을 겁니다.
넷째, 막대한 엑스포 유치 예산을 어디에 썼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지난해 엑스포 유산은 2516억원과 올해 3228억원, 합쳐서 5744억원입니다. 53억원이 들었다는 최종 PT 영상은 유치 실패 이후에도 "11년 전 히트곡 '강남스타일'에 부산은 단 9초만 나온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가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윤 대통령이 척결을 강조하는 어떤 카르텔이 작동한 것인지도 짚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유치 과정에서 '대중 외교' 어떻게 했는지도 문제
그리고 유치 과정에서 대(對)중국 외교를 어떻게 했는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올해 3월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정상화를 중재한 나라가 중국이었습니다. 미국은 중국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확전 방지를 위해 나서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수십 년 째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규모 경제지원과 군사원조를 해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엑스포 유치전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68개 회원국에서 한국을 압도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국제정치의 무대인 엑스포 유치전에서 이런 중국과 척지고 세계 이슬람의 대표 국가인 사우디와 겨루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심지어 '디플로매트'는 중국이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에 부산 지지를 철회하도록 강요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