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 ‘파행’, ‘파행’.
새해가 된 지 불과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세 차례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처럼 파행만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류희림 위원장을 둘러싼 ‘청부 민원’ 의혹 후폭풍 때문인데요.
지난 3일 ‘청부 민원’ 의혹을 안건으로 다루기로 한 회의는 여권 위원의 불참으로 무산됐고, 8일 열린 회의는 여권 우위 구도 속 ‘청부 민원’ 의혹을 비공개 기타 안건으로 논의하기로 하자 야권 위원의 반발 속 파행됐습니다.
9일 진행된 방심위 방송소위원회 회의 역시 야권 위원의 문제 제기 속 실랑이가 이어지며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습니다. 특히 이날 회의는 욕설 소동까지 빚었는데요. 여야 위원 간 극한 대립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진 셈이 됐습니다.
이날 이례적으로 류 위원장은 입장문을 내고 “심각한 인격모독 테러”라며 비판을 이어갑니다. 욕설 논란을 빚은 야권 위원이 추후 사과를 했지만 사태에 대한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방심위가 오는 12일 전체 회의를 예고하고 논란을 빚은 야권 위원에 대한 해촉 건의안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오른쪽)이 8일 오후 서울시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전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부 민원’ 의혹은 최근 류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보도와 그 인용 보도들에 대해 방심위에 민원을 넣도록 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야권 위원들은 류 위원장이 ‘청부 민원’ 의혹의 당사자인 만큼 회의에도 제척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행법은 해당 사안의 당사자이거나 해당 사안의 대상이 된 처분 또는 부작위에 관여한 경우 그 직무집행에서 제척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류 위원장은 ‘청부 민원’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제보자는 내부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한 범죄자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로 비칠 수 있겠지만, 본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만큼 류 위원장이 정확한 근거와 입증 자료를 통해 이를 말끔하게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의혹이 사실이라면 재발을 막기 위한 강력한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내부 관계자의 지인 등을 동원해서 심의 안건으로 올리고 여권 우위의 구도 속 방심위가 제재를 내리는 시나리오를 통한 ‘언론 탄압’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청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위원장의 여러 지인들이 제기한 민원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을 낳습니다. 이 같은 의혹들이 확실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방심위의 공정한 심의에 의문을 가질 것이 자명합니다.
만일 ‘청부 민원’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이 입증이 된다면 류 위원장의 주장대로 내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확고한 장치가 마련돼야 마땅합니다.
류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개인정보 불법 유출 주장에만 힘을 실을 뿐, 의혹과 관련한 민원인과의 관계를 명백히 밝히지 않습니다.
역사는 증명합니다. 진실은 언제고 밝혀진다는 것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