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입사 상식시험에 '노견'(路肩)의 뜻을 묻는 문제가 나오곤 했습니다. 어렵습니다. 영어 road shoulder를 일본에서 영어 그대로 '길 어깨'를 뜻하는 ‘路肩(노견
·ろかた)’으로 바꿔 썼고, 이걸 우리가 그대로 이어받아 썼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언어 잔재의 하나인데, 요즘도 이런 문제가 출제되고 있을까요?
2005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당시 법제처장에게 법률용어에 대한 '한자시험'을 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법제처가 추진한 '법률 한글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이 단순히 한문에 한글음을 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 몽리(蒙利·저수지 등 수리시설의 혜택을 입음), 삭도(索道·케이블카 등의 케이블), 정려(精勵·부지런히 일함), 분마(奔馬·급히 뛰는 말), 결궤(決潰·둑이 무너짐), 호창(呼唱·높은 목소리로 부름), 저치(貯置·저축하여 둠), 전촉(轉囑·다른 기관에 위촉함) 위기(委棄·위임하고 포기함) 등 교통안전법, 형법, 민법에서 실제 사용하는 용어 10개를 물었습니다. 법제처장은 그중 2개를 맞췄습니다.
노 의원은 "법대 교수 출신에 법제처장이니까 2문제나 맞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며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까지 버젓이 법전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며칠 전 출근길에 지하철 1호선 플랫폼 높은 곳에,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혼잡개소'라고 써서 걸어놓은 안내판을 봤습니다. 이 안내판을 붙인 건 보는 즉시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라는 뜻이겠으나, 글쎄요? 빨간색 바탕에 혼잡개소 문구 옆에 '!'를 붙였으니 뭔가를 조심하라는 정도만 짐작될 뿐입니다. 구글링을 해봐도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글은 나오지만 정확한 뜻은 찾지 못했습니다.
제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함께 "이게 무슨 말일까요???"라고 올려봤습니다. "무슨 뜻이래요?", "한글이지만 한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의미 이해 불가. 인파 이용 시간대에 혼잡할 거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을라나?", "역 안에 저렇게 (공식적으로) 크게 써놓고 사람들 보라고 내건다? 정말 심각하네요",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저걸 돈 주고 인쇄해서, 돈 주고 걸어 놓다니"라는 댓글이 달렸으나 역시 정확하게 뜻을 짚어내는 답은 없네요. 억지로 한문을 맞춰보면 '混雜個所'아닐까 싶습니다.
역 사무실에 물어보니 "'혼잡한 곳 중의 한 곳'이라는 뜻으로 그 바로 앞에 이용객이 많은 계단이 있어서 안전을 조심하시라고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