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심수진 기자] 국내 펀드 시장이 사상 처음으로 순자산총액 10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상장지수펀드(ETF)가 각광받으며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전체 펀드 시장의 규모는 커졌지만 액티브 펀드는 여전히 부진하고, ETF의 성장 이면에도 인버스·레버리지 등 일부 투기성 종목으로의 쏠림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펀드 순자산총액은 1000조8666억원(9일 기준)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1970년 국내 최초 펀드가 설정된 지 54년 만으로, 2017년 500조원을 넘어선 후 가파르게 성장해 1000조원대를 기록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펀드 시장에 유입된 자금은 68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 총액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971조4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기간 설정액은 전년 대비 11.3% 증가한 924조8446억원이었습니다.
전체 펀드 중 공모펀드엔 33조7000억원이 순유입됐습니다. 다만 주식형 펀드에서 7600억원이 빠져나갔고, 주식채권 혼합형에서도 1조8400억원이 유출됐습니다. 주식형 펀드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진 와중에도 펀드의 순자산이 증가한 것은 새로운 ETF가 다수 상장한 데다 주가가 오른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지난해에도 ETF의 성장은 대단했습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121조657억원으로 1년 전보다 54.2%나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신규 상장한 종목도 2002년 ETF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이후 가장 많은 160개에 달합니다. 일평균 거래대금도 3조2078억원으로 1년 전보다 15.3% 늘었습니다.
다만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도 포착됩니다. 지난해 160개 ETF가 신규 상장하며 전체 종목수는 812개로 확대됐지만 거래량은 소수 종목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량이 100만주 이상인 종목은 26개, 50만~100만주는 24개 종목에 불과했지만, 1만주 미만은 전체의 49%에 달하는 398개 종목이었습니다.
게다가 일평균 거래량 상위 10개 상품 중 6개가 인버스·레버리지, 2차전지 등 투기적 성격이 강한 종목들입니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시장 또는 업종 전체에 투자한다는 ETF 고유의 장점이 퇴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TF는 액티브 펀드에 비해 사고 파는 게 쉬워 투자자들의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어서 성장하면 할수록 이면의 부작용도 부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TF 시장이 주목받다 보니 업계의 경쟁은 과열양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파이가 커졌는데 정작 운용사들의 수익성은 하락하는 중입니다. ETF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보수 인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말(11월 기준) 국내 펀드 총보수(TER)는 평균 0.43%로 2022년 말 0.50% 대비 0.07%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ETF 선호도가 높아 점유율을 위해서는 보수 경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펀드 투자가 수년째 위축된 상황에서 시장이 ETF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습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말 기준 머니마켓펀드(MMF)와 ETF를 제외한 공모펀드 설정액은 100조2000억원으로, 2010년 127조2000억원에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액티브 펀드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사이 ETF의 투자영역이 넓어지면서 자금이 대거 이동한 결과입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최근 몇 년간 은퇴인구를 타깃으로 한 생애주기형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앞세우고 있지만 전체 액티브 펀드를 살리는 데는 역부족입니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액티브 펀드의 침체는 부진한 운용 성과와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며 "자산운용사들이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운용 성과를 올리기 쉽지 않았고, 운용 성과를 만들어도 현금 흐름 유입으로 연결되지 못해 생존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심수진 기자 lmwssj072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