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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드업이 뭐길래
입력 : 2024-01-29 오후 5:08:12
파울루 벤투 현 UAE 축구 대표팀 감독(왼쪽), 위르겐 클린스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빌드업(Build-Up). 사전적 의미로는 '무엇인가를 높게 쌓아 올리다'라는 뜻입니다. 의미에서 볼 수 있듯, 본래 건설이나 건축 산업분야에서 주로 사용했던 용어죠. 
 
그런데 이 빌드업이라는 단어가 본래 쓰여야할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전적 의미와는 큰 상관 없이 일상생활 전반에서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일이죠.
 
빌드업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다름 아닌 축구입니다. 축구에서 높게 쌓아올릴 게 뭐가 있을까요. 볼 점유입니다. 계속 볼을 소유하면서 공격기회를 상대팀보다 많이 가져가고, 이를 통해 '골'이라는 최종 목표에 상대팀보다 더 쉽게 접근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독일무대를 평정한 한국축구의 레전드 차범근 전 감독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방송사 해설위원 시절, 이를 '공격작업'이라는 단어로 바꿔서 쓰기도 했었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와닿는 의미죠. 
 
한국축구에서 빌드업이 화두에 오른 건 바로 파울루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에 오르면서부터 입니다. 정작 재미있는 것은 벤투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있던 4년여의 시간 동안 자신의 축구를 '빌드업 축구'라고 일컬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표현을 쓰긴 했었습니다. 바로 '주도적인 축구'.
 
누군가가 A팀은 '빌드업을 강조하는 축구다'라는 말을 쓴다면 그 A팀은 수비라인을 거의 중앙선 가까이까지 높게 올리고 중원과 수비진영에 '볼플레잉(Ball-Playing)'이 가능한, 즉 좋은 발재간과 탈압박 능력을 갖고 주도적으로 패스를 하고 점유율을 높이며 상대 수비로부터 볼을 잘 뺏기지 않는 선수들을 배치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조금 오해가 생긴 모양입니다. 딱 앞서 설명한 것까지만 놓고 보면 2000년대 후반 세계축구의 흐름을 주도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 그리고 스페인 축구대표팀이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그들은 쉴 새 없이 볼을 돌리며 야금야금 공간을 차지하는 '티키타카' 축구로 세계 축구계를 지배했습니다. 
 
이 때의 잔상이 오래 남았을까요, 티키타카 축구는 이른바 빌드업 축구 중의 한 방법론에 불과했지만 '빌드업=티키타카'라는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벤투가 한국대표팀 감독에 부임하고 높은 수비라인과 부지런한 중원 움직임으로 강팀과의 경기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모습을 보이자 팬들과 언론은 "대한민국도 이런 축구를 할 수 있어"라고 놀라며 이를 빌드업 축구라는 단어로 단정짓기 시작했습니다. 벤투 감독이 수차례의 언론 인터뷰에서 "빌드업 강조 축구가 아닌 우리가 주도하는 축구"라는 부연설명을 했지만 나중에는 단어의 용례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벤투가 강조하던 주도적인 축구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팀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루과이 같은 강팀을 상대로 유려한 공격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부침이 있었지만 결국 16강에도 진출했고요. 
 
벤투는 분명 한국 대표팀에 좋은 유산을 남기고 갔습니다. 이는 모두 수치화, 데이터화 돼서 향후 한국 대표팀을 좀더 주도적이고 체계적인 축구를 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 수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 아시안컵 한국 대표팀에는 이 '빌드업'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예선 3경기 우리가 모두 점유율도 높았고 모든 수치데이터가 앞서는 데 그게 무슨 말이냐하고 반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빌드업 축구는 단순히 볼만 많이 돌려서 점유율 수치만 높이는 축구가 아닙니다. 주도적이고 체계적인 축구를 할 수 있는 선수를 배치하고 상대팀 성향에 따라 각각의 세부 전술을 입혀 상대하는 축구를 통칭하는 단어로 봐야합니다. 단순히 수비진영에서 볼만 많이 돌리며 줄 곳을 못 찾는 축구를 흔히 'U자형 빌드업'이라고 합니다. 
 
물론 승리라는 결과만을 도출하기 위해 90분 내내 웅크려있다가 긴 패스 한 방에 우당탕탕 골이 들어가며 승점을 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축구가 재밌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이길 수 있는 경기는 굉장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주도적인 빌드업 축구를 하는데는 많은 노력이 따릅니다. 상대보다 더 많이 뛰어야하고, 공간을 찾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하고, 볼을 뺏기지 않기 위해 기술을 길러야합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요즘 축구는 11명의 선수 모두가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결과만을 얻기 위한 '뻥축구'가 아닌, 특정 선수의 개인기량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기도하는 심정으로  무책임하게 손놓고 있는 축구가 아닌 결과와 과정까지 잡아내야 하는 빌드업 축구. 어렵지만 해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럴만한 역량이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송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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