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HD현대중공업(329180)이 방위사업청(방사청)의 부정당 업체 지정 심의에서 행정지도 처분을 받으면서 올해 말에 예정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의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수주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개청 이래 방사청은 해군 함정 사업에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에 초도함 건조까지 맡겨왔습니다. 현대중공업은 KDDX 기본설계를 지난해 마무리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해군 사업 참가 자격이 유지되면서 KDDX 사업도 전례처럼 흘러갈 것이란 관측입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계약심의회에서 KDDX 사업과 관련한 현대중공업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했습니다. 앞서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KDDX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몰래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작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 입찰에 참여하며 군사기밀을 포함한 방위사업 관련 특정 정보를 외부에 제공하지 않겠다는 청렴서약서를 작성했고, 방사청은 직원들의 기밀 유출이 서약을 위반하는지를 판단했습니다.
이에 방사청은 "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가계약법 제27조 1항 1호 및 4호 상의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제척기간을 지나 제재 처분할 수 없다"며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 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고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해군 함정 사업 입찰 제한이 면제되자 올해 말에 예정돼 있는 KDDX 사업의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수주 방향도 예상됩니다. 방사청은 오는 2030년까지 6000톤(t)급 KDDX 6척을 발주합니다. 총 사업비는 7조8000억원 규모입니다.
KDDX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KDDX 사업은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됩니다. 호위함급 이상 함정을 설계·건조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서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유일합니다. 앞서 진행됐던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도 한화오션과 현대중공업이 각각 나눠 수주했습니다.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는 기본설계를 누가 수행했는지에 따라 대략 예측이 가능합니다. 방사청은 지난 2006년 개청한 이래 기본설계를 수행한 사업자를 초도함 건조까지 맡겨 함정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방위사업관리규정을 보면 현재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방사청 심의 결과로 초도함 건조 사업자 달라졌을 듯
만약 KDDX 기본설계를 수주한 현대중공업이 이번 계약심의위에서 부정당 업체로 지정돼 입찰 참가 자격을 잃을 경우, 초도함 건조 사업은 경쟁계약 방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 경우 한화오션이 단독으로 입찰에 참가해 수주를 따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 단순 행정지도 처분이 내려지면서 KDDX 초도함 건조 사업이 통상적인 함정 사업의 선례처럼 이어 것이란 분석입니다.
방사청 결정에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국내 함정산업 발전과 해외수출 증대를 통해 K방산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반면, 한화오션은 "현대중공업의 기밀 탈취는 방산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위로 간주한다"며 "이에 따라 재심의와 감사 및 경찰의 엄중한 수사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크게 반발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점차 심해지는 양사의 특수선 사업 과열 경쟁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방사청 계약심의위를 앞두고 출처 불명의 수사기록이 공공연하게 유출되는 등 마타도어가 극에 치닫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번 사태가 일단락 된 만큼 함정 건조 업체들이 윈윈해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화오션 KDDX 개념설계 모형(왼쪽). (사진=한화오션)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