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금융지주와 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내놨는데요.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5대 금융지주는 당국이 주문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르기 위해 이사회 개편과 경영승계 절차 개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범관행에서는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금융사 이사회 기능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간 은행을 핵심 계열사로 하는 금융지주들은 확실한 지배 주주가 없어 현직 최고경영자(CEO)가 사외이사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장기 연임에 성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이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통해 이사회 및 사외이사 평가 강화, 이사회 구성 다변화 등을 촉구하면서 금융지주들은 이달 말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구성원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부랴부랴 대응하고 있습니다.
하나금융은 사외이사 1인을 더해 사외이사 정원을 8명에서 9명으로 늘렸고, 우리금융도 6명에서 7명으로 1명 증원됐습니다. KB금융은 7명, 신한금융은 9명을 유지하기로 했는데요. 4대 금융의 사외이사 숫자는 종전 30명에서 32명으로 2명 늘었습니다.
눈에 띄는 점은 여성 사외이사를 큰 폭으로 늘린다는 점입니다. 기존에는 KB금융과 신한금융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사외이사가 1명에 불과했지만,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이 여성 사외이사를 각각 2명으로 늘리면서 여성 비율이 높아졌는데요. 4대 금융 사외이사 총 32명 중 10명으로 여성 비중이 30%를 넘었습니다.
문제는 금융지주들이 지배구조 선진화에 선제 대응하고 있지만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4대 금융의 전체 사외이사 물갈이 폭은 크지 않습니다. 기존 사외이사 중 7명이 사의 또는 임기 만료로 물러나고, 9명의 인사가 신규 추천됐는데요. 전체적으로 이달 중 임기 만료가 도래하는 사외이사 중 상당수가 중임 추천되는 상황입니다.
이사회 구성이 교수·연구원 등 학계 출신이 여전히 많이 포진했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신규 추천된 사외이사 후보 9명 중 학계 출신은 4명(약 44.4%)으로 가장 많습니다. 임기 만료로 회사를 떠나는 사외이사 7명 중 4명(약 57.1%)이 학계 출신인 점을 고려하면 별다른 변화가 없는 셈입니다.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을 위해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이사회 구성원 중 사외이사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요.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방지하고 경영투명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게 사외이사입니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거수기 논란을 떠올리면 의문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지난해에는 당국이 이사회 역할을 강력하게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이 제시한 이사회 안건에 반대 의견을 개진한 사외이사는 전무합니다. 그런데도 금융지주는 이사회가 제 역할을 잘했다는 자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 금융지주사는 이사회가 경영진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보고서에 기재하기도 했습니다.
3월은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됩니다. 주총을 통해 이사진 선임, 정관변경 등 다양한 안건이 상정될 전망인데요. 금융지주들은 주총 전까지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른 이행계획을 금감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금융사의 보여주기식 이사회 개편으로는 실효성 있는 결과를 얻어내기는 힘듭니다.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을 위한 적극적이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종용 금융증권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