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84)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일반의 예상을 깨고 민주당을 원내 1당으로 만들었습니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안철수 대세론'에 아랑곳없이 "(민주당-안철수-국민의힘)3자 구도에서도 이긴다"는 전략을 고수, 결국 초반 지지도가 낮았던 오세훈 후보를 당선시켰고, 이는 2002년 국민의힘 대선 승리의 시발점이 됩니다.
정교한 정세 판단과 분명한 메시지로 국면을 장악하는 정치력에 직장의료보험과 재형(재산형성)저축 도입,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조치, 헌법의 경제민주화조항(119조 2항) 신설 등의 업적을 종합해, 정치권은 그를 '여의도 차르', '김종인 매직'으로 부릅니다. 여야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행보에 "정체성이 뭐냐"는 비판이 무성하지만 "정체성이 밥 먹여 주나? 그때그때 나라에 필요한 일을 한다"고 일축합니다.
이처럼 거대 정당에서 큰 성공을 했던 그가 지금은 의석 4석에 불과한 개혁신당에서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의 싹 자체가 시들어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때 10% 안팎 지지를 받았던 개혁신당은 현재는 3~4%대로 위축돼 있지만, 평소에도 "정치에서 시간은 그리 중요한 조건이 아니"라던 그답게 "선거 양상은 한 달 동안에도 많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판-개혁신당 등장, 개혁신당-새로운미래 합당과 결별, 민주당 공천 논란, 조국혁신당 약진 등 총선 판이 요동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은 "윤석열정부가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이번 선거는 여하간에 윤석열정부 2년에 대한 평가"라고 단언했습니다. 다음은 총선을 28일 앞두고 광화문에서 김 위원장과 나눈 문답 요약입니다.
김종인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진행한 <뉴스토마토> 인터뷰에서 "지금은 한국의 정치적 위기상황이다. 이대로 가도 한국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대로 가도 한국 사회가 지속 가능할 것인지 회의"
-이전과 달리 작은 규모인 개혁신당에 참여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치를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하고 계신데, 현재의 한국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에 보수정권이 10년 진보정권 10년씩 집권했잖아요. 내가 두 당에 가서 봤을 때 보수 진보하고 별 차이가 없어요. 그 사람들이 일반 국민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갖고, 시대 변화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대통령은 국민의힘, 국회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데 지난 2년 동안 양당이 국민에게 남겨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따져보면 윤석열정부도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죠. 그래서 완전한 정치적 위기 상황인데, 이대로 가도 한국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정치가 바뀌려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입해서 최소한도 중재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세력들이 태동하는 과정에 석연치 않은 일들이 있어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잖아요? 그래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게 내가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거 양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에도 변동이 시작된 모습입니다.
국민들이 양당에 기대하는 건, 코로나를 겪으며 악화된 경제 상황을 어떻게 회복하냐는 겁니다. 윤석열정부 탄생 이후에 아무런 대책이 없었어요. 각자도생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선거가 닥치니까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게 지원금을 주겠다, 전기요금을 보조한다 해요. 정치라는 건, 로마시대부터 민생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종북세력 척결'을 내걸고, 민주당은 '반국민세력'을 운운합니다. 민생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국민이 얼마나 답답하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조국혁신당 같은 당이 등장해서 검찰개혁 등 극단적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솔깃해하면서 지지율이 높아진 거죠.
유권자들도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때입니다. 유권자들이 선거 때 정치인들의 버릇을 가르치지 않고 선택권이 없다고만 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개혁신당 사람들에게 정치개혁이 왜 필요하고, 경제사회개혁은 왜 필요한지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호소하면서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혁신당 현 지지율, 이낙연과 합당이 가장 치명적"
-개혁신당 지지율은 현재 3~4%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개혁신당이 안고 있는 딜레마죠. 이준석 대표가 개혁신당을 처음 만들 때 지지율이 9%를 넘었어요. 그런데 이낙연 전 총리와 통합하면서, 이준석 대표에 대해 기대했던 지지층이 좌절하고 물러선 거예요.
-창당 초기만 해도 개혁신당이 정책 발표를 이어갔는데 어느 순간 정책발표가 중단되고, 윤석열정부와 이재명 대표만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이낙연 전 총리와 헤어진 계기가 정책 때문입니다. 개혁신당은 기존대로 정책을 계속해서 발표하려 했는데, 이 전 총리에게 제동이 걸린 모양이에요. 현재 개혁신당에 인력이 얼마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확하게 무엇을 할 것인지 제시할 겁니다.
선거 양상은 한 달 동안에도 많이 변해요 지난 2006년 성북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조순형씨가 처음에 지지율 12%였고, 상대는 48%였습니다. 모두가 아무리 해도 안 될 테니 포기하라고 했는데, 제가 그때 선대위원장을 하면서 2주 만에 승리했어요. 유권자들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김종인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진행한 <뉴스토마토> 인터뷰에서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 권력 구조로는 정치를 바꿀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정치개혁 위해서는 개헌이 필수"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강조하셨는데, 남은 한 달 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을 제시할 계획입니까.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 권력 구조로는 정치를 바꿀 수 없습니다. 개혁신당이 원내교섭단체(20석) 의석 정도를 확보하게 된다면 개헌발의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사회·경제 현상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정치인데 지금은 밤낮 없이 권력 투쟁만 벌이고 있잖아요. 정치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권력 구조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민주당 공천 논란? 야당 공천은 원래 시끄러워"
-민주당 공천에 대한 논란이 컸습니다.
민주당은 나름대로 공천 룰을 정해놨는데, 소위 비명계라는 사람들이 하위 10%, 20%에 많이 포함되고,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공천에서도 그쪽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난 거 같아요. 사실 정당이라는 것은 하나의 조직체이기 때문에 룰에 대해 존중하는 것이 정치인의 모습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새누리당에서 이탈표가 나왔잖아요. 그 당시에 이탈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현재 정치적 상황이 어떻습니까. 본인들이 내세운 정권을 본인들이 무너트리고 생존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착각입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봤을 때 자신들의 당대표를 날리겠다는 행태를 취했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공천에 그대로 적용된 거예요. 이게 사실은 남의 당이 자기 룰 갖고 한 공천에 대해서 제3자가 잘했네, 못했네 얘기할 일은 아니고, 결국엔 유권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이전 언급들을 봐도, 야당의 공천 과정이 총선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여당은 권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한데, 야당의 공천은 언제나 시끄러울 수밖에 없어요. 밖에서는 시끄럽다고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혁신 공천이라고 하잖아요? 현역 의원이 180명이나 되는 정당에서 현역 탈락이 많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어요. 현역을 교체해달라는 국민들 여망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결과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공천이 끝나고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봐야 합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6차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종인 공천관리위원장에게 당 점퍼를 선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번 총선 의미에 대해 '윤석열정권 심판' 핵심이라는 시각과 '한동훈 대 이재명'의 미래 권력 대결이 중요하다는, 두 가지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투표하는 사람들이 한동훈과 이재명을 보고 찍나요? '한동훈 대 이재명'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이번 선거는 여하간에 윤석열정부 2년에 대한 평가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보십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양당이 모두 과반을 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해야 개혁신당 같은 제3당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구도로 가야 여야 충돌을 피할 수 있지 않겠어요?
-1987년 무렵에 민정당 사회개발연구소장 시절에 2년 정도 직접 선거여론조사를 담당했던 게 선거 예측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고, 이달 말 선거 공고 직전쯤 되면 윤곽이 나타날 것 같아요. 지금은 여론조사 기관들이 열심히 하는데, 저런 식 여론조사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여론조사 비용이 너무 싸서 그런지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데이터는 직접 보지 않는데, 다만 정치, 경제, 사회의 흐름을 보면 대략 어느 방향으로 갈 거라는 건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어요. 선거라는 것은 경제, 사회의 변화에 대한 흐름을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경제사회 흐름이 국민의 삶과 직접 관련돼 있다는 걸 모르고 선거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을 모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