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정부가 의료계에 갈등 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있지만 진척이 없습니다. 의료계는 의정 대화 선결조건으로 ‘2000명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에 따른 대학별 입학정원 배분까지 끝난 상황이지만, 정부 결단에 따라 정원 재조정은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판단입니다. 다만 민감한 대학입시 문제인데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부가 의과대학 2000명 증원을 토대로 대학별 정원 배분을 발표한 이후에도 증원 규모와 배분 재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요건이 성립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28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학입시 정원은 고등교육법에 의해서 교육부 장관이 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내년도 대학입시요강이 확정되지 않았고, 의료계와 논의해 정원 조정이 이뤄지는 건 정치적 결정의 문제지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입 문제가 예민해서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행정소송을 걸 수는 있겠지만, 당사자 적격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직접적으로 법적인 피해자가 있어야 당사자 적격이 성립한다. 대입 정원이 조정되는 걸로 법적 피해를 봤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의대정원 배분을 발표했다고 해서 법적 효력이 있는 건 아니”라며 “여성가족부 폐지처럼 입법 사안이 아니고 정부가 인허가할 수 있는 부분은 언제든 조정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어 “개인적으로 이번 의료계 사태와 관련한 소송들이 여론전 성격이 강한 것 같다”며 “행정소송이 당연히 나올 수 있지만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 총선 앞두고 정치적 부담감
문제는 현실적으로 정부가 ‘2000명 증원 백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미 증원 배분까지 완료해서 발표한 내용을 뒤집는 일인 데다, 총선을 앞두고 의대 증원을 번복하는 모양새가 정치적 부담도 큽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 의료계 이슈는 민생 최대 현안으로 여론의 지지도 받았다”며 “2000명 증원이 타협 대상이 되면, 그동안 내세운 의료개혁도 의사들에 막혀 뒷걸음질 치는 걸로 보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총선이 끝날 때까지 ‘2000명 증원’을 물리기 쉽지 않다는 전망입니다. 그는 “정부에서 의대 증원을 선거용으로 밀어붙인 면이 크다”며 “그동안 3대 개혁이라고 내세운 교육개혁, 노동개혁, 연금개혁이 모두 진척없는 상황에서 의료개혁에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양보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이날도 증원 규모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의료개혁은 의사 직역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직접적인 당사자”라며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