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많은 엄청난 악행으로 많은 이들의 미움을 샀던 주인공 박연진이 그래도 이 장면에선 말 한번 참 잘했다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대사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치기를 앞세워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후배에게 광고주인 자기 남편의 든든한 뒷배를 언급하며 "너 나이 어린 거? 언제까지 어려? 내년에도 어려? 후년에도 어릴 거니? 니가 아무리 콜라겐을 처먹고 처바르고 용을 써도 내자리는 어림도 없단 뜻이란다. 이 어리기만 한 년아."로 압살해 버리죠.
영화 '은교'의 대사처럼 우리의 젊음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고, 늙음도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죠.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소멸을 향해 간다지만 노화와 질병만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게 모두의 바람일 텐데요. 100세 시대, 오래 사는 건 별로 바라지 않지만 천천히 늙으며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이제 어리지도, 늙은 나이도 아닌지라 연진이 말처럼 콜라겐을 쳐먹고 쳐바르면서 노화를 늦추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일까요. 최근 '저속노화'라는 키워드가 화두입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속노화'는 2030 세대에게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층의 건강 악화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인데요. 2030 고혈압 환자는 2012년에 비해 45% 증가했고, 30세 이하에서 만 명당 당뇨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디저트와 액상과당, 초가공 식품, 배달음식 섭취가 증가한 데다 현생에 쫓겨 살다 보니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조차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아무거나 집어 먹어도 괜찮았던 마냥 어렸던 시기를 지나고나자 저도 먹는 거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먹는 게 곧 내가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속 노화 식단은 혈당을 최대한 천천히 상승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혈당을 빠르게 높이는 정제 곡물로 만들어진 흰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는 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해요. 채소를 풍부하게 섭취하고, 동물성 지방은 최대한 적게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고요. 저속노화와 함께 '헬시플레저'란 단어도 화두입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강관리를 의미하는데요. 이같은 트렌드에 걸맞게 무설탕, 제로칼로리 식품, 단백질 기능성 식품들의 판매량도 늘고 있죠. 먹는 것과 함께 운동, 멘탈관리도 중요하다 보니 #오운완(오늘운동완료), #오명완(오늘명상완료) 등도 SNS 인증샷으로 많이 올라옵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인 정희원 교수는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란 책에서 현재 20~40대가 믿고 의지할 것은 40~50년 후에도 잘 작동하는 스스로의 내재역량밖에 없다고 했는데요. 기대 수명이 늘어나는데 건강 수명이 연장되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의료비로 휘청거릴 거라고 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나이 든다는 것도 이제 중요한 삶의 과업이 됐는데요. 사람 만나며 외식에 술자리가 잦은 기자란 직업을 가진 저는 왠지 그 과업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듭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