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국민 요구를 외면한 마이웨이 선언이었습니다. 처절한 반성도, 변화의 다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존 국정운영 방향이 옳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4·10 총선 참패 이후 처음으로 직접 입을 열어 심정을 밝혔습니다. 내용도 형식도 논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최소한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진솔한 반성을 했어야 함에도 '국무회의'라는 형식을 택했습니다. 독선과 오만으로 얼룩졌던 지난 2년에 대한 국민 심판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내용도 문제였습니다. '민생'을 강조했지만, 대부분을 정책 자평에 할애했습니다. 방향은 옳았지만 "모자랐다", "부족했다", "미흡했다" 등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12분의 윤 대통령 국무회의 모두발언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추가 브리핑을 통해 수습에 나서야 했습니다.
"국정 방향 옳다"…반성 대신 고집불통 '마이웨이'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정운영 기조를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총선 참패 이후 6일 만에 육성으로 밝힌 첫 입장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모자랐다"고 했습니다. 국정 기조와 각종 정책은 큰 틀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됐지만, 국민이 충분히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총선에서 참패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윤 대통령이 "결국 아무리 국정의 방향이 옳고 좋은 정책을 수없이 추진한다고 해도 국민들께서 실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동일한 시각으로 풀이됩니다.
정부의 정책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도 이어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공매도 금지, 원전 생태계 회복, 반도체산업 육성, 대학 경쟁력 강화, 사교육 카르텔 혁파, 국가 돌봄 체계 실현 등 국정운영 성과를 나열했습니다. 또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수출 드라이브와 건전재정, 민간주도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실제 수출이 되살아나면서 경제가 다시 일어서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건희 리스크'를 비롯해 대통령실이 안고 있는 여러 논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영수회담 등 야당과의 협치 방안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소통'도 단 2회만 언급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회와도 긴밀하게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라며 "민생 안정을 위해 필요한 예산과 법안은 국회에 잘 설명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습니다. 오히려 민주당을 겨냥해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고 경제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와 상통하는 것"이라며 "우리 미래에 비춰보면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총선 과정에서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16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가 생중계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야-당정 관계 모두 '적신호'…여당 내에서도 '부글부글'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비공개 마무리 발언을 통해 "국민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회초리를 맞은 경우를 예로 들며 "결국 국민을 위한 정치를 얼마나, 어떻게 잘할 것이냐가 국민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으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도 "모두 열려있다"고 밝혔습니다.
총선을 통해 국민이 윤석열정부 집권 2년을 평가하고 심판했음에도, 윤 대통령이 대대적 쇄신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대야 관계는 물론 당정 관계에도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당장 국민의힘 내에서조차 민주당이 주도하는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겠다는 입장들이 이어지면서 거부권도 무력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민심도 한층 싸늘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공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정기 여론조사 결과(4월13~14일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국민 68.0%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데 대해 '윤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총선 참패를 계기로 26.3%로 추락했습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54.0%가 "대통령실과의 차별화를 통한 견제"를 주문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윤 대통령의 입장을 지켜본 야권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아집과 독선으로 국정 기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거부했다"고 비판했고, 김보협 조국혁신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윤 대통령은 자랑 말고 반성을 하라"고 꼬집었습니다. 국민의힘은 직접적 언급을 자제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들끓는 기류들이 엿보였습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자세히 보지 못했다면서 답변을 피했습니다. 정희용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생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국민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챙기겠다는 다짐과 실질적으로 국민께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펼치겠다는 각오"라고 평가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