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요즘 살만하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얼마나 오래된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지표만 봐도 상황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1.4%로,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래 가장 낮았습니다. 국가 잔고도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는 주요 상장사 등 기업의 경영 악화로 법인세가 덜 걷히며 56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세수 결손이 빚어졌습니다.
올해도 세수가 어렵습니다. 법인세 전망은 예상보다도 최악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12월 결산 상장기업 705개의 작년 개별 기준 영업이익은 39조5812억원으로, 전년 대비 44.96% 뚝 떨어졌습니다. 법인세의 큰 축 중 하나인 삼성전자는 적자를 기록해, 법인세를 '0원'으로 신고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민생과 가장 접목해 있다는 물가는 어떨까요. 작년 물가상승률은 3.6%였는데, 올해도 2~3%대를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금사과' 현상 등 과일류가 크게 올랐는데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 상승률은 6.5%로, OECD 평균(5.32%)보다 높았습니다. 35개국 중 3위입니다. 정부는 연내 2% 중반대로 내려갈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이미 물가가 어느 정도 떨어졌어야 한다"며 올해도 3%대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라고 봤습니다.
지표를 얼핏 훑어봐도 살만하다는 말은 쏙 들어가는 듯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전면전이든 교전이든, 국가 대 국가의 충돌은 많은 이들에게 아픔을 남깁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 소식에 당장 국제유가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갈등이 고조될 경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가능성도 있어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석유의 6분의 1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는데, 발목이 묶이는 것이죠. 봉쇄가 현실로 이루어질 경우 현재 배럴당 70~80달러, 많게는 90달러인 국제유가가 350달러로 폭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정부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총선 전 정부는 민생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감세 정책을 내놓았는데요. 총선 참패로 여소야대가 확실시된 이 상황에서 해당 정책들은 확실히 폐기할 것인지, 감세 대신 지출을 줄여 건전재정 기조를 지킬 것인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할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정부는 그래선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도 정책은 반드시 확실하게 성공해야만 합니다. 토론회 앞에 민생이라는 단어가 붙었다고 민생을 챙기는 게 아닙니다. 세수 확보 방안을 모색하고, 물가를 잡고, 실질임금폭을 늘렸을 때 비로소 민생 곁에 선 정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