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성구미 포구에 남아있는 빨간 등대.(사진=당진시청)
'성구미'라는 작은 항구가 있었습니다. 고향에 있는 곳인데, 집에서 차로 30분만 가면 도착입니다. 성구미에 가면 정박된 통통배 위에서 서해대교를 보면서 갓잡은 회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선장 아저씨가 어디선가 팔딱 거리는 우럭을 꺼내서 칼을 몇 번 휘두르면 탱글한 회 한 접시가 금방 나왔습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인데 그때 먹은 회맛이 잊히지 않습니다. 이쯤되면 다들 가보고 싶겠지만, 못갑니다. 항구가 통째로 없어졌거든요. 대신 공단과 제철소가 들어섰습니다.
바닷가를 쭉 둘러 굴뚝들이 희뿌연 연기를 뿜어냈습니다. 제철소는 그 안에 기찻길도 놓일 만큼 엄청 크더군요. 제철소에 건물이 하나씩 지어질 때마다 외지인도 밀물처럼 들어왔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또 초등학교가 들어섰고, 날마다 회색과 푸른색이 섞인 단체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셔틀버스를 타고 산업단지를 오갔습니다.
동시에 전국에서 공기가 제일 나쁜 고장이 됐습니다. 특히 제철소 근처는 김장할 때 배추를 씻으면 까만 쇳물이 나온다는 소문 아닌 소문도 돌았습니다. 봄에는 황사와 철가루가 섞인 미세먼지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물걸레질이 필수입니다. 그래도 자연이 아프니까 고향이 살아나더군요. 별 볼일 없는 깡촌에서 도시가 됐습니다. 일자리가 생기니 사람도 많아지고 활력도 생겼죠. 결국 중학생 땐 군에서 시로 승격됐습니다. 으리으리한 시청도 새로 지어졌고요.
통통배의 추억을 앗아가고 공기도 너무 나빠졌지만 제철소를 원망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제철소가 경쟁력을 잃으면 도시가 망할 수도 있거든요. 얼마 전에도 제철소 안에 발전소를 짓겠다고 하자 환경단체들이 나서서 항의를 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철소 주변 주민들은 긍정적입니다. 발전소를 지으면 지금보다 일자리가 늘고 사람들도 늘어날 테니까요. 도시가 살아있도록 지키려면 도시를 갉아먹어야 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