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융단폭격 수준으로 강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14일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현재 25%에서 100%로, 반도체
·태양전지 관세도 25%에서 50%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철강·알루미늄·전기차용 배터리·천연 흑연 등 핵심 광물의 관세도 25% 올리고, 무관세였던 중국산 주사기와 바늘 등 의료기기에도 50%를 부과한다. 전임 트럼프정부 때 최대 25%였던 관세를 2배에서 4배까지 대폭 인상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무역법 301조(대통령에게 미국의 무역과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응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부여)를 근거로 중국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박빙 또는 열세인 대선 구도를 바꾸기 위한 시도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는 인플레이션과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 고율 관세를 조정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대선이 다가오면서 그 기조를 바꿨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미 대중 관세 인상 의지를 여러 번 밝혔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중 관세는 큰 폭으로 인상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은 그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주도하면서 중국 등에 자유무역과 공정경쟁 의무를 강조해 왔다. 중국의 WTO 가입을 유도한 것도 미국이었고, 그 결과 중국은 탈냉전기-WTO 체제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런데 이제 그 중국이 그 미국을 "WTO 규칙 위반"이라고 맹비판하고 있다. 이번 관세 폭탄에도 "모든 필요한 조치로 정당한 권익을 지키겠다"고 했다. 어차피 중국도 WTO 규칙을 숱하게 위반해 왔고, 자유무역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미국도 부의 적극 개입과 보호무역으로 국부를 축적한 뒤 ‘사다리 걷어차기’를 했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중국은 이달 말쯤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 공동성명' 발표를 추진하고 있다. 15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한·중·일 정부가 식량과 자원 등의 공급망 투명화·강화를 위한 논의 촉진을 비롯해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환경 정비, 지식재산 보호, 스타트업 지원,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등을 담은 공동성명 발표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 중국으로서는 꼭 강조하고 싶은 사안들이고, 한국과 일본도 명분상으로는 마다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각각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미국 눈치가 보이지 않을 리 없다. 구체 문안 내용과 수위에서 이견이 나오는 이유다.
불안하다. 윤석열정부는 일본에서 생활 플랫폼으로 탄탄히 자리 잡은 라인야후 사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 자유무역 공동성명’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고차방정식 아닌가?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