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아니 3개월 후도 어떻게 판도가 변할지 모르겠어요. 그만큼 이커머스 시장의 향방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 유통 산업은 삶의 근간이자 소비자와의 접점이 높은 콘텐츠를 다루고 첨단 기술의 개입 여지가 적어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전통 산업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직관적으로 유통 산업이라 하면 신선함보다는 친숙함, 지식 기반보다는 인력 기반, 변화보다는 안정이라는 키워드가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었는데요.
하지만 유통 산업은 코로나19 시기를 전후해 대변혁의 시기를 겪으며 업계 관계자들의 혼란도 한층 가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당시 유통 업계의 중심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간 1세대 소셜 커머스 업체들은 물론 기존 유통 공룡들까지 참전하며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해 온 이커머스 시장은 불과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쿠팡, 네이버 등의 강자 위주로 시장 재편이 이뤄지면서 어느 정도 교통 정리가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올 들어 우리 이커머스 시장은 다시금 안갯속으로 빠지는 모양새입니다. 일단 이 같은 이커머스 업계 대변혁의 중심에는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C커머스)의 국내 시장 공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는 막강한 자본력을 토대로 압도적인 물량, 극도의 염가 마케팅을 내세우며 이커머스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 유통 시장을 초토화하고 있죠.
아울러 이커머스 시장을 대하는 정부의 판단도 아쉽다는 지적입니다. 우선 국내 업체들은 C커머스와 공정한 경쟁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국내 업체들은 각종 정부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중국 업체들은 관세, 부가세 등 규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죠. 또 지난달 중순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제품의 국내 반입 차단을 위해 80개 품목에 대한 해외 직구 금지 정책을 내놨다가 곧바로 철회한 것도 정부가 시류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입니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공정거래위원회와 쿠팡 간 공방전도 이커머스 업황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공정위가 매긴 1400억원의 과징금 및 쿠팡의 로켓 배송 중단 검토에 대한 옳고 그른지 여부를 떠나 이들 간의 장외 싸움이 길어질 경우, 오히려 이 틈을 빌어 C커머스를 비롯한 해외 이커머스 업체들의 파상공세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3개월, 반년, 또 1년 후 우리 이커머스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안타까운 점은 선두권을 제외한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어, 시장 전망이 조금은 어두울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는 겁니다. 소수 강자들만의 리그가 아닌, 많은 국내외 업체들이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경쟁해나가는 이커머스 시장을 기대하기란 무리일까요?
김충범 산업2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