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민경연 기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임직원 대상 사내대출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개선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임직원 복리후생 정책 조정은 노동조합과의 협의 사항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는데요. 정부가 공공기관에 권고하는 임직원 대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대출 취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경영평가상 불이익은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공기관 사내대출 지침 무시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과 수은은 사내대출 대출금리 산정, 대출 한도 등을 주먹구구식으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사내대출과 관련해 한국은행이 공표하는 은행 가계자금 대출금리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은은 내부 규정에 따라 산업금융채권(금채) 금리를 적용해 사내대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국책은행의 사내대출 금리 산정 기준이 제각각이라고 지적받은 바 있습니다.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 근심은 커지는 가운데 국책은행은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임직원에게 대출을 해주고 있다는 특혜 대출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산은은 국감 지적 사항의 조치 결과에 대해 "사내대출을 제외한 대부분의 복리후생 제도를 정부지침을 준수하고 있으며, 임원과 일반직원이 차별 없이 운영하고 있다"며 "관련 제도 개선은 노사 간 합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노사협의회 안건 제출 등을 통해 노조와 지속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산은 관계자는 "사내대출 금리 기준이 산금채에 고정돼 있기 때문에 산금채 발행 물량에 따라 비싸지거나 싸질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시중금리와 큰 격차가 있지 않다"며 "산은 직원 입장에서 사내대출이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에 금리 혜택을 보고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습니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지난해 기획재정부 특별감사에서 생활안정자금 대출한도를 조정하라는 시정지시를 받았습니다. 수은 역시 기재부가 개선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항목이 노조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사측 단독으로 바꿀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사내복지 등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자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해 사내대출로 주택자금 40억원(87명), 생활안정자금 84억원(494명)을 취급했습니다. 주택임차 용도는 5000만원 한도로 산금채 1년물 금리에 0.73%포인트를 더한 연 4.39% 금리입니다. 주택구입 용도 대출은 5000만원 한도로 원화대출고정 기준금리(1년)에 0.73%포인트를 더한 4.57%입니다.
수은의 경우 지난해 생활안정자금 관련 사내대출 12억원(61명)을 취급했습니다. 대출조건은 2000만원 한도에 연 4.32% 금리(13년 이내 상환조건)입니다. 논란이 많은 주택자금 대출은 지난 2022년부터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내대출 규정을 바꾸지 않고, 기관 경영평가에 불이익을 받는 것을 피하고 싶다 보니 선택한 '꼼수'라는 지적입니다. 공공기관 사내대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면 슬그머니 대출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사내대출 관련 특혜 시비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모습. (사진=뉴시스)
일부 손질 불구 특혜 논란 계속
기업은행의 경우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에 관한 지침'을 반영해 최근 노사 합의로 사내대출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기업은행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가계안정자금과 주택임차자금, 주택구입자금 등을 명목으로 사내대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출한도는 가계안정자금 2000만원 이내, 주택임차자금은 3000만원 이내, 주택구입자금 5000만원 이내입니다.
당초 기업은행은 내부 규정에 따라 사내대출 금리 산정에 코리보 금리를 적용하고 있고, 주택 규모와 상관 없이 대출을 취급해왔습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주택 구매자금의 경우 무주택자가 85㎡ 이하(일명 '국민주택 규모')를 매입할 때만 사내 대출을 지원해야 합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 산정 기준, 주택자금대출 취급요건 등 정부 지침에 맞게 손질한 사내대출 제도 개선안을 이달 중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주택자금 용도의 경우 대출금액에 제한이 있다보니 실질적으로 이용하는 직원이 거의 없어 내부적으로 이견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일부 금융공공기관이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여전히 정부 지침 준수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복리후생을 당연시하는 공무원 조직 문화와 개혁에 반발하는 노조의 합작품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은 단체협약 사안이기 때문에 노조가 끝까지 버티면 바꿀 수 없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권고' 사항으로 두는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최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조이기로 실수요자들도 주택 대출이 어려운 점을 고려할 때 금융 공공기관 직원들이 특혜성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데 대한 형평성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노조들은 사내대출은 별도 재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특혜 대출이 아닌 '복지'로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맞춘 공기관 임금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며 "직원 복지에 대해서도 무조건 정부 지침을 따르라며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민경연 기자 competiti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