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전세계약이 끝나서 보증금 돌려받으려는데 집주인과 며칠째 연락이 안되더라고요. 저한테 몇천만원의 보증금은 인생의 전부입니다. 너무 불안해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최희성 씨(33세, 가명)는 직장과 가까운 서울 변두리 지역의 한 빌라에서 거주 중이었습니다. 그는 전세계약 만료 즈음에 이직을 하게 돼 이사를 결심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고자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집주인이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아 극심한 불안증세를 호소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동산 등기부등본도 확인해봤지만 큰 이상을 발견하지는 않아 정말로 집주인이 잠적한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고 합니다.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없었습니다. 집주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 간 연락이 안됐다며 정중히 사과를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 원하는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최 씨는 몇 년 전부터 기승을 부리는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닌지 며칠을 불안에 떨어야했다고 합니다.
직장이나 학업을 위해 살 집을 구해야하는 2030 청년들은 전세사기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은 전세사기 피해자 총 1만256명 중 무려 70%가 2030 청년층이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지난해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하며 피해자 구제를 위해 힘쓰고 있지만 최근 신촌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100억원대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다는 이들도 나타나는 등 전세사기 여파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전세사기에 떠는 2030…민간 임대차 시장 불안투성이
상황이 이렇자 청년들은 위험부담이 있는 민간 임대차 주택 대신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청년대상 임대주택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조건을 만족하기만 한다면 적어도 사기 위험에 노출될 일은 없기 때문이죠.
업계에 따르면 청년주택 사업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16년 청년들의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을 해결하겠다며 추진한 ‘역세권 2030청년주택(역세권 청년주택)’이 그 시발점입니다. 서울시는 역세권 청년주택 관련 절차를 준비한 후 2019년 충정로역과 강변역에 첫 입주자를 모집했습니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역세권 인근에 공공과 민간이 청년주택을 건설해 만19세 이상 만39세 이하의 청년, 신혼부부 등에 주변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사업입니다. 공공지원민간임대 주택의 경우 계약 갱신을 통해 최대 8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서울시를 중심으로 청년 대상 임대주택 공급사업은 지속 추진 중입니다. 서울시는 2023년에는 역세권 청년주택을 간선도로변까지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청년안심주택’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청년안심주택(공공임대)은 준공 후 서울특별시로 소유권이전 등기되며, 준공 후 임대관리(계약, 수납, 재공급, 재계약 등) 업무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수행합니다.
서울시의 청년안심주택 공급현황 및 계획에 따르면 청년안심주택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시내 48개 지역에 1만5634가구가 공급됐습니다. 이중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분은 3411가구에 달합니다.
정부가 지난 2022년 공공분양 주택 50만호 중 34만호를 청년층에 할당하는 ‘미혼청년 특별공급’ 신설 이후 민간분양에서 청년 층 추첨비율이 늘어나는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 공급은 지속적으로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올해도 이미 완료된 사업장과 예정 사업장을 포함해 총 25곳에 청년안심주택이 공급됩니다. 공공임대분 가구수도 지난 5년 간의 62%에 달하는 2138가구에 달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역시 다양한 청년 대상 임대주택 유형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기숙사형 청년주택을 비롯해 행복주택, 청년매입임대주택, 기숙사형 청년주택, 청년 전세임대주택, 청년신혼부부 매입임대리츠(아파트), 신혼·신생아 매입임대주택(Ⅰ·Ⅱ형) 신혼부부 전세임대주택(I·II형) 등이 있습니다.
경기 광명시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송정은 기자)
경쟁률 치열한데…공급 하세월
이처럼 정부가 다양한 청년 대상 임대주택 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공급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울 은평구 소재 SH 서울리츠행복주택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정민 씨(34세, 가명)는 "임대주택 공급량도 적고 특히 청년이나 1인가구 주택들의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더라도 대부분 최대 거주기간이 6년이라는 점도 아쉽다. 더욱 다양한 청년대상 주택공급 정책이 나오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저출산 문제도 결국 청년들의 주거 불안에서 나온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때문에 보다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는 청년 대상 임대주택의 공급확대뿐 아니라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실질적이고 파격적인 지원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서진형 광운대 일반대학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청년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지역을 특별구역으로 지정 해서 용적률 완화 등 건축 관련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주택을 짓는 건설사들 입장에서도 유입 요인이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어떤 부지에 청년임대주택 공급을 한다면 용적률 종상향 등 한정된 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돼야 한다"며 "청년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도 세제 혜택, 인센티브 제공 등 실질적인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