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반도체 기술 확보가 곧 국가 기술경쟁력과도 이어지면서 해외로의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 번 기술이 유출되면 그동안 기업에서 공들여온 사업방향 전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반도체 기술은 기술적 가치가 높을 뿐더러 경제적 가치도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전기전자·조선·원자력 등 70여건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런 관리에도 유출 사고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외 기술유출 늘어나
지난해 6월1일 오후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반도체 실험실 모습. (사진=연합뉴스)
29일 업계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최근 발표한 바, 올해 상반기 해외 기술유출 적발 건수는 12건입니다. 이 중 6건은 국가핵심기술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6건 중 4건은 반도체 관련 기술 유출이었습니다. 매년 해외 기술유출 적발 건수는 늘고 있습니다. 해외 기술유출 적발 사건은 2021년 9건, 2022년 12건, 지난해 22건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해외 유출된 기술 가운데 다수는 중국으로 유출됐습니다.
실제로 빈번한 기술 유출 시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SK하이닉스(000660)의 반도체 관련 최신 기술이 담긴 자료 3000장을 빼돌린 혐의로 30대 중국 국적 여성 A씨가 경찰에 체포된 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기지도 했습니다. A씨는 2022년 반도체 불량률을 낮출 수 있는 메모리 전 공정 관련 핵심 기술이 담긴 자료를 개인적으로 빼낸 뒤 출력했습니다.
삼성전자(005930) 전 부사장은 10년간 삼성전자의 지적재산 관리를 총괄하는 IP센터의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면서 삼성전자 IP센터 직원에게 내부 기밀 자료인 특허 분석 정보를 건네받아 이를 삼성전자와의 특허침해소송에 활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또다른 삼성전자 전 임원이 반도체 공장 설계도면을 빼돌려 중국에 동일한 공장을 설립하려다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기술 보안 중요성 부각…각사 방침 강화
박진성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이 지난해 6월1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해외유출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고가 잇따르자 기업에서는 보안을 강화하고 나섰습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부터 사내 보안분석팀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선 사내 게이트를 통과할 때부터 카메라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저장장치에 자료를 옮길 때도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메일 외부 발송 시에는 참조인을 꼭 넣도록 해야 하는 규정을 뒀습니다.
삼성전자에서는 인쇄 시 보안용지를 사용하고 사업장 출입 시 보안프로그램을 가동해 사진 촬영이나 저장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신 기업에서는 대외적으로 모든 보안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보안 프로세스를 다 알릴 수는 없다. 다 알리게 되면 오히려 다른 데서 보안 공격이 올 수 있다"며 "대신 보안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보안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보안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보안을 강화하게 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보안 수준을 높이는 것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면서 "보안 강화를 하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업무에 방해가 된다. 직원들의 반발도 있다. 그래서 업무 효율성과 보안을 적절하게 조율해서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인력 확보 경쟁 심화…유출시 리스크 커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와 'SAFE 포럼 2024'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력 유출에 대한 대책은 사측에서 마련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습니다. 개인의 직업적 자유를 제한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는 개인이 다른 회사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복리후생, 성과급 등으로 처우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을 비교하는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처우를 강화해 인력을 붙잡아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개인이 모든 반도체 공정을 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개인의 인력 유출이 회사의 기술 유출로 이어진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훌륭한 인재를 잃는다는 측면에서는 경쟁력을 잃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최대한 좋은 복리후생을 통해 대우를 잘해주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들은 새로운 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번 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인력 채용에 돌입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경력사원 채용을 시작한데 이어 SK하이닉스도 신입·경력사원 동시 채용을 진행했습니다.
학계 관계자는 "양사에서 좋은 인재를 뽑아가기 위해 직접 연락을 해오고 학교에 찾아와 우수한 학생들은 미리 뽑아가려고 한다"면서 "더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특별 전형이 없음에도 특별한 우대를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