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말,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조금 바꿔봤습니다. 들뢰즈는 영화가 픽션을 가장해 세상의 진실을 말한다고 정의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세상이 영화가 될 것이라는 말은 진실입니다.
언젠가 세상은 은행이 될 것이다. 비약적인 문장이지만 일부 사실이기도 합니다. 교통카드부터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의 페이, 스타벅스 카드, 리디북스 충전금까지.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미 수많은 회사들이 은행이 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은행의 주 역할은 여·수신 등입니다. 사람들이 맡긴 돈을 모아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빌려줘 돈을 법니다. 그리고 카드 등의 겸영업무를 통해 지급결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선불충전시스템들은 예치금을 이용해 결제뿐만 아니라 이자수익도 얻고 있으니 일종의 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업체들은 결제대행 수수료 절감, 고객 락인 효과와 선불충전금 확보를 통한 예탁금 수익 등의 이유로 선불충전 서비스를 도입합니다.
선불충전시장 규모는 빅테크 3사(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만 해도 이미 지난해 70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유통 플랫폼, 배달, 전자책, 카페 등 다양한 개별 업체들도 선불충전수단을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불충전시장 규모는 더욱 거대합니다.
은행의 역할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지난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선불충전금을 판매한 머지포인트는 어느날 갑자기 지급 불능을 선언하고 야반도주를 시도했습니다. 편리함을 앞세우던 선불충전수단이 한탕 땡기기용이 됐을 때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오는 9월부터 선불전자충전수단 이용자 보호를 강화한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도입됩니다. 선불충전업 감독 대상이 되면 충전금 전액을 별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간 선불전자충전수단 발행잔액이 500억원 미만인 업체는 포함되지 않고, 스타벅스 등 직영점에서 사용하는 선불전자충전수단은 제외돼 사각지대는 여전합니다. 언젠가 세상이 은행이 될 거라면 그만큼의 보호장치도 함께 갖춰져야 할 텐데 말이죠.
대성당의 시대가 찾아오듯 대은행의 시대가 찾아왔다. 사진은 실물 화폐의 모습.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