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이상동기 범죄를 일컫는 말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구체적인 동기가 없거나 비정상적인 동기를 갖고 저지르는 범죄를 말합니다.
지난달 29일 밤 12시 무렵 서울 은평구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가장인 피해자가 이웃이 휘두른 일본도에 무참히 살해당한 겁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피해자는 말 그대로 처음 본 사람에게 ‘묻지마 살인’을 당한 겁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지난달 30일 밤 경기 수원시에서는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귀가 중이던 10대 학생을 흉기로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피해 학생이 피하면서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연이어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에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서울 은평구 소재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아파트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살해한 30대 남성 백 모씨가 1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살인 혐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묻지마 범죄는 일상에서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어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범죄가 많이 일어나면 시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반복되는 범죄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는 등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큰 범죄입니다.
묻지마 범죄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회적 해악이 매우 심각한 범죄임에도 묻지마 범죄를 모방하는 범죄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모방범죄를 예고하는 등의 글을 올리는 사례도 많은데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 예고 글을 올리더라도 살인죄의 예비 또는 음모 혐의의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협박죄(3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나 공무집행방해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를 적용하는 실정입니다.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경찰력이 낭비되는 등 행위의 죄질에 비해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인 겁니다.
우리 형법상 예비나 음모는 특별히 처벌 규정이 있어야 처벌되므로, 처벌되는 범죄의 종류가 많지 않습니다. 살인죄의 경우 예비나 음모가 처벌되지만, 예고 글을 쓴 것만으로는 살인에 대한 고의나 외부적 준비행위 등을 입증하기가 곤란해 살인 예비죄(10년 이하의 징역)를 적용하기 어려습니다.
하지만 묻지마 살인 등의 예고 글을 올리는 행위의 사회적 해악을 고려하면, 처벌이 필요할 정도로 독자적인 불법성을 갖는다는 것에 이견은 없을 텐데요. 모방심리 때문에 예고 글을 쓰고 실제 범행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공중협박죄를 독자적인 범죄 유형으로 규정해 살인 예비죄에 준하는 처벌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는 흉기의 사용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총포와 달리 도검류는 운전면허가 있으면 신체검사서나 정신질환 등 확인서 없이도 경찰서장이 허가를 내줍니다. 이렇게 허가만 받으면 도검류의 종류와 상관없이 집에 보관할 수 있는 겁니다. 사후적으로 허가를 갱신할 필요도 없어 한 번 허가를 받으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일본도와 같은 도검류는 단칼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물건인데요. 현재는 도검류를 일률적으로 칼날의 길이가 15㎝ 이상이거나 15㎝ 미만이라도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뚜렷한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세분화해 위험성이 큰 도검류는 총포와 같은 수준의 관리를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묻지마 범죄는 시민들의 삶과 매우 밀착돼 있어 더 큰 공분을 사게 되는데요. 법원도 점점 더 엄벌 쪽으로 기우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의 특성상 강력한 처벌이 주는 범죄 예방효과는 다소 제한적입니다. 실제로 범죄자들을 보면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소년범을 포함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병행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묻지마 범죄는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벌어질지 예측하기가 힘든 특성이 있는데요.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수사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보건당국 등 관계 부처의 협력으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방범이 취약한 지역에 폐쇄회로TV(CCTV) 확충, 자율방범대 운영 등을 통해 위험성 높은 사람들을 미리 파악해 예방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추가적인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살인 예고 글을 장난으로 작성하는 심각한 행위를 엄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 마련이 시급한데요. 공중협박죄의 신설을 통해 묻지마 범죄를 하려고 준비하거나 장난 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범죄자에 대해서는 죄질에 맞춰 엄벌하면서도 정신적 치료를 병행해 다시는 끔찍한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일상을 파괴하는 범죄를 막을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발맞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