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 때 저는 휴직을 한 뒤 지방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화롭게 흙길을 밟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뙤약볕과 친해지는 법을 체득했습니다. 서울에서의 수많은 소음은 잊고 풀벌레와 산새들의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웠습니다.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웃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된 백모(37)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을 복직을 앞두고 착잡한 마음을 안고 있을 때 험악한 뉴스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대낮에 신림역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대로변,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어 서현역에서도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14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나라도 충분히 경악할 만한 일들이 제가 떠난 서울에서 연이어 벌어졌습니다. 칼부림을 예고하는 게시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급기야 경찰은 수상한 사람들의 소지품을 수색하게 이르렀고, 지하철에서는 시민들이 흉기 난동으로 오해해 아수라장이 되곤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치닫자 복직이고 뭐고 서울에 입성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복직은 이뤄졌지만 난생처음 상경한 사람처럼 늘 주위를 경계하던 제 모습이 생생합니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려 하면 괜스레 거리를 두곤 했습니다. 하루는 누군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는데 저는 얼음이 돼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번호를 요구하는 상대방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어 거절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는데 문득 아찔해졌습니다. 이런 거절이 괜히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려 숨겨둔 칼을 불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요란하던 칼부림이 잠잠한가 싶었더니 올 여름에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모양새입니다. 아파트, 숭례문 지하보도, 공용 쉼터 등 다양한 장소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상 동기 범죄여서 공포감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이에 호신용품을 다시 찾는 사람들도 늘었습니다. 찜통더위가 문제인 걸까요, 찜통처럼 답답한 마음이 문제인 걸까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가뜩이나 높은 요즘, 칼부림이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네요.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무색한 상황에서 최악의 사건들까지 이어지면서 더욱 각박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