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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권력·언론·대중에 관한 '불편한 진실'
1920년대 경성 통해 현재를 비추는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
입력 : 2013-03-12 오후 6:19:28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사회의 지배계층은 권력 유지를 위해 개인에게 낙인을 찍고, 언론은 특종으로 장사를 하며, 대중은 감정과 유행에 휩쓸린다.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의 겉모양은 살인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이지만 실상 방점은 이 세 주체의 역학관계에 찍는, 일종의 풍자극이다. 진실을 쫓는 한바탕 소란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이 소외된다.
 
<독살미녀 윤정빈>은 1922년 경성에서 발생한 김정필의 사건을 토대로 한다. 쥐약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재판 받는 촌부 윤정빈(김정필)과 그를 취재하는 기자 황기성이 극의 주축이다.
 
극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작가의 균형감각이다. 극의 무게추는 지배층과 언론, 대중 중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극은 윤정빈 사건의 진실이 언론과 대중에 의해 어떻게 변질되고 조작되는지, 그 과정을 신랄하게 보여줄 뿐이다.
 
 
 
 
 
 
 
 
 
 
 
 
 
 
 
 
 
 
 
 
근대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지만 요즘 현실과도 겹치는 대목이 제법 많다. 친일행위에 앞장서는 권력지향적 인물, 친일파와 민족자본가 사이를 오가며 금권주의로 흐르는 언론인, 진실찾기보다는 감정분출에 쉽게 매혹되는 대중의 속내는 현대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밖에 기사와 소설 사이를 오가는 기자의 글,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사회지도층의 추태, '윤정빈은 애매하다('억울하다'의 옛 말)'를 외치다 느닷없이 만세운동으로 번지는 대중의 비논리적인 열기, 신문화에 대한 대중의 소비행태, 미인에게 관대한 사회풍토 등 극 저변에 깔린 작가의 다양한 문제의식이 눈에 띈다.
 
인물의 의상은 구체적인 고증을 거쳤지만, 무대는 최소한의 오브제를 활용해 단촐하게 꾸몄다. 이로써 인물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은 상당부분 차단된다.
 
신문사 사무실은 일렬로 늘어선 세 개의 책상으로, 법정은 높다란 출입문과 창문으로만 포인트를 줬다.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경우, 조명이나 무대의 리프트를 활용해 입체적인 모습을 더하는 정도로 표현됐다. 극 중 간간이 무대 위에 투사되는 각진 조명은 마치 제 3자의 냉정한 시각처럼 느껴진다.
 
깔끔하게 정돈된 무대연출, 극작이 <독살미녀 윤정빈>의 이해도를 높였다. 연극은 황기자의 글을 눈에 비유해 순결함과 추함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끌어내며 마지막까지 관객을 배려한다. 다만 너른 무대 때문인지 춘원의 문학적 재능에 대한 황기자의 질투심, 황기자와 윤정빈 사이의 오묘한 화학반응 등 인물간 관계가 다소 평면적으로 비춰지는 점이 아쉽다.
 
작 이문원, 연출 이현정, 공동제작 남산예술센터, 극단 C바이러스, 출연 선명균, 김지영, 신용진, 이종윤, 이은주 등, 31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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