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1926년 8월4일은 극작가 김우진과 음악가 윤심덕이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현해탄에 투신한 날이다.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해 현해탄을 건너 부산으로 향하던 배에서 벌어진 30세 동갑내기 남녀의 정사(情死)는 보수적이던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근대의 대표적인 청춘 스캔들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날 두 남녀가 배에 탄 시각과 투신한 시각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세간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작가 겸 연출가 성종완과 작곡가 김은영이 의기투합해 만든 창작뮤지컬 <글루미데이>는 바로 이 기록되지 않은 시간을 상상으로 채워넣은 작품이다.
18일 대학로문화공간 필링에서 만나본 공개시연회 중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무대였다. 기울어진 배 안 선실을 형상화 한 무대는 시대의 격랑 속에 청춘남녀가 온몸으로 겪어냈을 가치관의 혼란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윤심덕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로서 유명세를 탄 실존인물인 만큼 뮤지컬 넘버 구성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 눈치였다. 특히 공연 중 김우진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 즉 윤심덕과 가상인물인 사내 모두 윤심덕의 대표적 히트곡인 '사(死)의 찬미'를 부른다.
작곡가 김은영은 "연출과 상의 끝에 '사의 찬미'를 죽음의 테마로 활용을 해보려 했다"면서 "뮤지컬 넘버 중 하나인 '도쿄 찬가' 중간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사의 찬미' 노래가 흐르지만 나중에는 그 노래가 점점 죽음의 압박처럼 느껴지도록 작곡했다"고 설명했다.
성종완 연출가는 작품에 대해 "일차적으로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음악에 가장 신경을 썼고, 배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을 마련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교조적인 메시지를 설파하려는 작품은 아니지만 관객들이 윤심덕과 김우진의 모습을 보며 삶의 태도를 반추해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출연진의 각기 다른 개성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번 공연의 관극 포인트 중 하나다. 윤심덕 역에는 안유진과 곽선영, 김우진 역에는 윤희석과 김경수, 사내 한명운 역에는 정민, 이규형이 각각 더블캐스팅돼 마치 다른 버전의 두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윤심덕의 의상은 캐스팅에 따라 흑백으로 구분되며, 이 밖에 연기 호흡이나 캐릭터 구축에서도 배우의 개성을 존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극의 메시지보다는 배우들의 서로 다른 에너지와 음악의 선율, 라이브 연주 등에 초점을 맞춰 감상하면 좋을 작품이다. 뮤지컬 <글루미데이>는 23일까지 서울 대학로문화공간 필링1관, 28일부터 30일까지 화성 반석아트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