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일벌백계를 천명하자 권오성 육군참모총장과 이성한 경찰청장이 나란히 사표를 제출했다.
윤일병 사건으로 재조명된 군 내부의 폭력적 현실과 유병언 추적 혼선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박 대통령의 서슬 퍼런 공개 질타 한마디에 육군과 경찰을 이끌던 두 수장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 박 대통령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박수현 기자)
그런데 박 대통령이 7.30 재보선의 새누리당 압승과 여름휴가 복귀 이후 가진 첫 국무회의에서 윤 일병 사건만 언급한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특히 세월호 정국이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여야가 강경대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문이 윤일병 사건에만 한정된 것을 두고 비판적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특별검사 추천권을 진상조사위원회 또는 야당에게 달라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이를 정쟁으로 치부하는 새누리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세월호 국조특위 청문회의 경우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 7시간을 밝히기 위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증인 출석을 놓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처럼 여야의 의견 대립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현재로서는 오는 7일 2주가량 만에 재개되는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도 타협점이 마련되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10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합의하며 세월호 정국 돌파 의지를 밝힘과 동시에 야당과의 소통 의지도 내비친 바 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께서 국무회의에서 여러 말씀을 하시면서도 세월호 진상과 책임 규명, 그리고 대통령 회동에서 약속한 바 있는 특별법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당의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사진=박수현 기자)
실제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지우기를 위한 정부여당의 프레임 전략만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여파로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 내수경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세월호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여당 내에서 공공연히 제기되는가 하면 윤 일병 사건을 전면에 내세워 여론의 관심사안도 분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 같은 국면 전환 시도의 근간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7.30 재보선이다.
김무성 대표는 6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세간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윤 일병 사건과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얘기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세월호에 관해서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지금 가장 큰 국민의 목소리는 민생경제 살리기"라면서 "세월호 여파로 우리 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느냐, 아니면 경제 활성화의 길로 가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의 염원인 민생경제 살리기를 성공시키려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입법이 속전속결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면서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경제 활성화 19개 법안과 정부조직 개편안 등 국가혁신법안은 투자 활성화와 경기 회복 및 민생 안정을 위해 반드시 빨리 처리되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아울러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오명을 국회가 쓰지 않으려면 민생경제 법안 처리에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세월호 관련 특별법 제정과 국조특위 청문회 증인 출석에 집중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을 우회적으로 질책했다.
김 대표는 이와 함께 실종자 10명을 품에 안지 못한 가족들 곁을 지키고 있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정상 업무 복귀를 요구했다. 해운사업 육성, 세월호 사고 재발 방지책 수립·수습비용 마련, 해피아 근절 등 이 장관이 할 일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더 이상 팽목항에 머물지 말 것을 주문한 대목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김 대표의 시선과 함께 높아진 그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특히 김 대표가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 부분은 여권이 세월호 관련 문제를 참사 113일이 지난 현재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비록 김 대표가 "그렇다고 세월호는 절대 망각되어서는 안 되고 주도면밀한 후속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부연했지만 '보상'과 '지원'에 방점이 찍힌 새누리당의 손길을 유가족들이 거절하며 여전히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누구를 위한 후속대책인지 의문이 붙는다.
7.30 재보선 압승을 발판으로 삼아 윤 일병 사건을 통해 세월호 국면을 전환시키려는 새누리당과, 이를 침묵으로 방조하는 박 대통령의 전략이 적중하면서 세월호가 국민들의 뇌리에서도 침몰할 것인지 주목된다. 상대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전열 재정비만도 벅찬 상황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진=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