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농구대표팀의 국제 대회 진출과 프로농구 제도 변경까지 맞물리며 한국 농구 흥행을 위한 변화의 시점이 오고 있다.
남자농구대표팀이 농구월드컵과 인천아시안게임에 진출하는 동안 국내에서는 프로농구연맹(KBL)이 국제농구연맹(FIBA) 룰 도입과 외국인 선수 신장 제도 등 세부사항을 조율한다.
대표팀의 국제 대회 선전과 팬을 모으기 위한 KBL의 변화가 성공한다면 농구 인기 회복에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국내 농구계는 지난 7월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뉴질랜드와 2차례의 평가전을 열어 만원 관중 사례를 경험했다. 여러 가능성을 봤으며 예열은 끝났다는 게 농구계의 목소리다.
◇월드컵 경험 살려 아시아 금메달 도전
◇16년 만에 농구월드컵 진출과 함께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는 남자농구대표팀. (사진=KBL)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은 오는 30일부터 내달 14일까지 스페인에서 열리는 농구월드컵에 참가한다. 대표팀은 1998년 그리스에서 열린 이 대회에 나선 이후 16년 만에 세계무대를 밟는다.
유재학 감독은 "1승 혹은 2승까지 노려보겠다"고 밝혔다. 같은 조에 속한 앙골라와 멕시코가 해볼 만한 상대로 꼽히는데 만약 2승을 할 경우 대표팀은 16강에 진출한다. 지난 5월부터 소집과 평가전을 반복하며 진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린 대표팀은 지난 25일 스페인으로 출국했다.
대표팀은 내달19일부터 10월4일까지 인천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한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12년 만에 국내에서 기회를 잡은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금메달을 향한 의지가 강하다.
대표팀은 1970년과 1982년 대회까지 총 3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장을 앞세운 중국과 이란을 포함해 최근 꾸준히 성장한 필리핀이 대표팀의 경쟁 상대로 분류된다. 가장 좋은 예상 시나리오는 대표팀이 부상 선수 없이 농구월드컵을 경험하고 돌아와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FIBA 룰 도입으로 '빠른 농구' 추구
◇올 시즌 프로농구의 목표를 '빠른 농구'로 세운 김영기 KBL 총재. (사진=KBL)
KBL은 지난 18일 이사회를 열고 FIBA룰을 기본으로 규정을 바꾸겠다고 전했다. 한 농구 관계자는 "최종 조율이 있어야겠지만 기본적인 제도를 국제 규정에 맞춘다는 방향을 잡았다"고 귀띔했다.
KBL과 FIBA 룰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애초 KBL이 1997년 출범 당시 미국프로농구(NBA)의 사례를 본떠 만든 몇 가지 독특한 룰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룰은 작전 타임이다.
KBL은 경기 도중 선수가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있지만 FIBA 룰에 따르면 벤치에서만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있다. 공격팀의 선수가 수비수들에 가로막혀 위기에 몰렸을 때 작전 타임을 불러 빠져나왔지만 앞으로 이런 장면은 보기 힘들다.
실제 일부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경기 막판 두 팀의 작전 타임이 계속 이어져 경기가 자주 끊긴다는 불만이 있다. 경기 시간이 1분 남았어도 실제 시간은 5분 이상 지속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작전 타임 횟수도 KBL과 FIBA가 다르다.
KBL은 20초 작전 타임이 있지만 FIBA에는 이 제도가 없다. FIBA 룰에는 한 팀당 90초 정규 작전 타임만 전반 2번과 후반 3번으로 총 5번을 쓸 수 있다.
또 FIBA 룰을 KBL이 도입하면 경기 도중 심판 판정에 대한 질의도 각 팀 주장만 할 수 있다. 판정을 놓고 감독의 항의가 빗발친 과거의 모습이 일정 부분 차단될 수 있다.
여기에 FIBA는 올해부터 공격 리바운드를 잡으면 그 팀의 공격 제한시간을 14초만 준다. 기존 24초에서 10초를 줄여 더 많은 공수 전환과 공격 농구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KBL도 이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FIBA 룰은 기본적으로 선수 중심이며 경기 흐름이 끊기는 걸 최소화한다. "경기가 자주 끊긴다"던 팬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해소될지 주목된다.
◇신장 제한 다시 살려 '기술자' 영입
◇KBL은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을 다시 도입해 단신 선수의 화려한 개인기를 팬들에게 제공하려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신장 측정하는 모습. (사진=KBL)
KBL은 외국인 선수 제도도 일정 부분 손본다. 장·단신 선수를 구분해 선발하도록 바꿀 계획이다. 각 구단의 장신 선수 선호를 일정 부분 막고 단신 선수를 데려와 화려한 개인기를 팬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세부 내용은 2014~2015시즌 개막전까지 조율할 예정이다.
과거 KBL은 제럴드 워커(SBS), 클리프 리드(기아), 데이빗 잭슨(TG) 등 빠른 발과 화려한 돌파를 바탕으로 한 기술자들이 많이 들어왔다. 팬들은 골밑에서 활약하는 큰 선수들보다 외곽에서 뛰는 이들의 플레이에 더 환호했다. 새로 취임한 김영기 KBL 총재는 이를 다시 살리겠다는 방침이다.
사실 KBL의 외국인 선수 제도는 자주 오락가락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7년 KBL 출범 당시 외국인 선수는 190.5cm 이하의 단신 선수와 203.2cm 이하의 장신 선수 1명씩을 선발하도록 했다. 이어 1998~1999시즌에는 193.5cm 이하 단신과 205.7cm 장신으로 바뀌었다.
2000~2001시즌부터는 2명 신장의 합이 398.78cm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으며 이 경우 1명의 신장이 208.28cm를 넘으면 안 됐다. 그러다 2008~2009시즌부터는 아예 신장 제한을 없앴다.
당시 제도 변경을 두고 "하승진(221cm)의 높이를 막아야 한다는 각 구단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하승진은 올 시즌 군 복무를 마치고 프로 무대에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