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10월 7일 주최한 ‘9·15 사회적 대타협의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 다녀왔다. 제목 그대로 노사정 합의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토론자들 간에 시각차가 뚜렷했지만 공통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는 노동개혁의 목적함수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토론자는 개혁의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평가의 인식차를 보였지만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개혁의 방향성과 목표가 지목된 것이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저임금노동자 비중,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의 확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비정규직 비중,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청년실업 등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사회적 요구이다. 이런 점에서 고용노동시장의 얽힌 매듭을 풀기 위한 노사정간 사회적 대화는 소중하며 이번 합의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을 꼼꼼히 살펴보면 노동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어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노동에 불리한 것은 법 개정을 강제하고 있지만, 경영계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대부분 ‘강구·노력한다’ 등 추상적인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노사정 합의에 대한 일반 국민대상의 여론조사 결과는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서지만 노동자들의 판단은 반대가 지배적이다. 민주노총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의 임금노동자 80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61.3%가 ‘노사정 합의의 과정과 내용에 기업가 및 정부·청와대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되었다’고 응답한 반면 ‘노동자 의견이 우선 반영되었다’는 의견은 11.8%에 그쳤다.
노사정 합의가 일회적으로 끝낼 이벤트가 아니라면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 합의가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출발점이라면, 국회 입법화는 그 출구이다.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노사정 논의의 한계를 뛰어 넘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첫째, 노사정 합의 주체에 대표성이 결여되었다. 노동계에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았고,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배제되었다. 비정규직, 청년대표들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논의가 진행되었고, 청년실업 해소 방안이 결정되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할 때, 합의의 수용성도 높아지고 사회적 지지도 강화된다.
둘째, 합의 내용은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필요성에 걸 맞는 정책 대안을 담고 있지 않다. 정부가 밀어 붙이고 있는 임금피크제를 통한 청년고용 해결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임금피크제와 성과형임금체계의 도입, 파견·용역 확대가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의 입구라면 그 출구는 저성과자 퇴출을 위한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이다. 재벌대기업에 기운 노동개혁 프레임에서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채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청 사용자성 및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성 인정’ 등 핵심 비정규직 해법들은 합의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셋째, 합의 이후 제출된 새누리당의 노동개혁 5대 법안은 노사정 합의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 노사정이 추후 논의 과제로 제기하였던 내용, 합의되지 않았던 것까지 법안에 포함시켰다. 비정규직(35세 이상)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뿌리산업’, 즉 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 등 제조업의 파견을 전면 허용하였다. 또한, 파견과 도급을 구별하겠다면서 원청의 공동안전보건조치, 직업훈련, 고충처리 지원 등을 파견의 지표로 보지 않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만연해 있는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노동개혁 입법화의 제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정부·여당의 노동개혁 법안은 노사정 합의라는 외양은 갖추었지만 속내를 보면 노사정간 입장도 뚜렷이 다르고 여야도 입법강행과 저지로 팽팽히 맞서 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노동개혁을 위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 목표는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번 노사정합의는 그 과정이나 내용 모두 함량미달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