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 기자] 정부와 금융당국이 해운을 비롯해 조선,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해운업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운업은 다른 기간산업에 비해 인수합병이 수월하지 않은 데다 업황이 받쳐주지 않아 침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해운업계에서 조선업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와의 차별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16일 김영석 해수부 신임 장관은 최근 해운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과 관련해 "기존 틀을 유지하는 것이 해수부의 입장"이라는 뜻을 밝혔다.
앞서 9일 해수부는 양사의 합병에 관한 언론보도에 대해 "수출입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 구조와 얼라이언스 중심의 글로벌 해운산업 체계, 부산항의 환적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양사 체제 유지는 필요하다"며 "해운 구조조정은 각 사가 마련하는 자구계획에 따라 주채권은행 등이 필요한 지원 여부를 검토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라고 해명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대해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이 다른 산업처럼 단순하지 않다"며 "각자 속한 얼라이언스와 운영하고 있는 노선이 달라 무조건적인 합병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현재 한진해운은 CKYHE, 현대상선은 G6에 포함돼 있으며 각자 속한 얼라이언스에서 맡고 있는 주력 노선에도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경제논리에 따라 운영노선의 선박을 줄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체 얼라이언스가 운영되기 위해 각 노선에 배치하는 선복량이 정해져 있고 이를 가입요건으로 삼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한 기업의 사정만을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양사의 합병일 진행될 경우 중복 노선에 대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어 얼라이언스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될 경우 국내 컨테이너 선사의 경쟁력은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합병 시 실질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합병 불가론을 뒷받침 한다. 지난 8월 기준 전 세계 2M, G6, CKYHE, OCEAN3 등 4대 얼라이언스가 약 80%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중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개별 점유율은 합쳐서 5%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각자 얼라이언스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아울러 양사 합병으로 우리나라를 거쳐 가는 노선이 줄어들 경우 부산항 등 국내 항만들이 가지는 중간기착지로서의 영향력이 떨어져 해운물류 면에서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동일한 구조조정 대상인 조선업에 비해 해운업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해운업계의 불만도 해수부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해운업계는 그동안 한진, 현대 등 대형 선사를 중심으로 자구안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조선업에 비해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내다 팔 수 있는 건 모두 매각하면서 자구안을 이행했는데도 압박은 여전하다"며 "이에 비해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는 금융당국의 대규모 자금지원이 계속되고 있어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한진과 현대의 경우 자구안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주력인 컨테이너 사업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매각을 완료한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업황이 개선되더라도 글로벌선사에 비해 반등할 수 있는 여력이 적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한진과 현대 등 원양선사를 제외하고 연근해 선사들은 대부분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형선사라는 상징성이 있어 해운업이 더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선사의 금융 지원을 위해 회사채 발행 지원 등 유동성 지원 정책 추진하고 있으며 해운보증기구 및 선박은행 강화, 초대형선박 발주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해운 등 기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해운업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은 김영석 신임 해양수산부장관이 지난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해양수산 비전과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