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용보험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올해 예정됐던 실업급여 수급액 인상도 미뤄질 상황에 놓였다. 정부는 현재의 제도 혼란을 국회 탓으로 돌리면서도 여전히 야당의 3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우선 처리 제안을 거부 중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실업급여 수준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인상하고,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하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1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65세 이상 용역근로자에 대해 실업급여 특례를 적용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맞춰 정부는 지난해 12월 실업급여 수급액 상한액을 4만3000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법안 개정이 지연되면서 시행령 개정도 사실상 중단됐다. 우선 법안이 개정되지 않으면 최저임금(올해 6030원) 인상에 따라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을 역전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 8시간(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하루 수급액(4만3416원)은 최저임금(4만8240원)보다 적지만, 휴일에도 급여가 지급돼 월 수급액(130만2480원)은 최저임금(126만270원)보다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행령만 개정되면 상한액 인상으로 인한 재정부담 증가로 보험료율이 높아질 우려가 있고, 반대로 시행령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하한액이 상한액을 역전해버린다. 현행 실업급여 상한액은 4만3000원이지만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한 하한액은 4만3416원이다. 어느 쪽이 됐든 실업급여 수급자가 최저임금 노동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이 같은 점들을 이유로 고용노동부는 법안이 개정될 때까지 모든 수급자에게 하한액인 4만3416원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고용보험법 처리 불발의 책임소재다. 정부는 ‘실업급여 단일액 사태’를 국회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실질적인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야권은 ‘노동개혁 5법’ 중 근로기준법 및 고용·산재보상보험법 등 3개 개정안을 우선 처리하자고 제안했으나, 정부·여당은 ‘일괄처리’를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다. 정부는 3개 법안만 처리할 경우 오는 8일 19대 국회 활동이 사실상 종료돼 기간·파견제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정부가 합의된 사안들을 볼모로 지나친 억지를 부린다는 입장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꼭 정부·여당의 주장만 옳은 건 아니다. 그쪽에서 우리의 주장도 받아주면 쟁점이 적은 법안들은 얼마든지 처리될 수 있다”며 “그런데 그쪽에서 받아주지를 않으니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부는 5개 법안을 한 번에 패키지로 처리하지 않으면 합의된 것도 처리할 수 없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어 “고용보험법을 받아줄 테니 기간·파견제법도 함께 처리하자는 건 이자 깎아줄 테니 빚내서 집 사라는 얘기인데, 그건 억지다”라고 덧붙였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노동개혁 5대 법안이 연내 함께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